다큐 니닉-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 Docu-Ninnik Fabrication (가편집본)
2012
니닉의 유래와 작가의 세계관, 에피소드 등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현재까지의 작가의 일대기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Support) 촬영 “박상호, 윤황” cinematography by Park Sang Ho, Yoon Hwang
Support) 특별출연 “김영, 김유석, 김효상, 박지욱, 서광민, 심가인” special guests Kim Young, Kim You Suk, Kim Hyo Sang, Park Ji Wook, Seo Kwang Min, Shim Ka In
BGM) –
전 이야기보따리를 짊어진 이야기꾼의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온갖 동화와 신기한 이야기들을 좋아했죠.
저는 완벽주의가 있었어요. 호기심을 끄는 것만 배우고, 관심 있는 건 잘 하고 싶어 했죠. 글, 음악, 미술은 모두 좋아하는 분야였어요. 불현 듯, 애니메이션이라는 총체예술을 인생의 목표로 삼겠다는 꿈이 생겼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선택했고, 언젠가 누구도 보지 못한 나만의 특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죽겠다!” 이 말을 언제나 당당히 말하고 다녔어요. 그것이 꽤나 긴 여정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도 보지 못한 특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말은 그 특별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그건 다시 평생의 예술혼을 바칠 완벽한 하나의 주제를 찾는 심오한 과제로 탈바꿈했어요. 인간의 신체나 감정, 자연과 같은 전형적인 주제들은 성에 차지 않았거든요.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겹치지 않는 것, 오래오래 전해질 가능성을 품은 이야길 꺼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난 오타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오타가 바로 니닉이었어요. 그 두 글자가 주는 어감은 그냥 이 세상의 것과 달라 보였어요. 경계를 알 수 없는 그라데이션 팔레트에서 색 하나를 정확히 집어 이름을 붙이는 느낌이었어요. 직감 혹은 영감이라 부르는 뇌의 활동은 이 불가사의한 선택을 진짜로 해냈어요. 게다가 제 완벽주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히 납득시켰죠. 그 후로 니닉은 우연히 나타난 단어에서 시작해, 개념, 세계관, 이야기가 되었고, 제 모든 예술 작업의 주제가 된 거예요.
호주에서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니닉은 어느 때보다 많이 변화했고 발전했어요. 교수셨던 Dr. Dean Bruton은 니닉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믿고 일깨워 주셨죠.
당시 저는 니닉의 작업 방향에 고민이 많았어요. 세계관이 확장될수록 그 기반도 더 견고해져야만 했거든요. 저는 컨셉추얼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춰 니닉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근본은 컨텐츠,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니닉은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라는 새롭게 개척할 예술 장르로 거듭났고, 이것은 2007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죠.
전시를 통해 컨셉추얼 컨텐츠를 발표하는 방식은 흔하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우려와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다행히도 비슷한 시기에 접한 톨킨의 책과 픽사의 전시가 그런 생각을 버리게 해줬어요. 톨킨의 세계관을 담은 실마릴리온은 창조자들의 유사한 습성이 배어있었죠. 창조의 근원의 경계를 탐험하는 듯한 모호함과 자신만의 언어.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어요. 상업 애니메이션의 프리 프로덕션 아트를 순수 미술의 장르로 당당히 내세운 픽사의 20주년 기념전은 실제로 제가 니닉으로 말하고자 하는바와 다를 게 없었어요. 큰 격려와 확신을 얻었죠.
설문조사, 도예, 페인팅, 드로잉, 컴퓨터 그래픽, 3D 애니메이션, 동영상 편집, 그리고 글쓰기까지, 언어유희로 시작된 한 개의 단어를 확장시키는 데는 방법과 기법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어요. 낙서일지라도 니닉과 어울린다고 판단되면 버리지 않았어요. 특이한 발음을 기록해서 이름으로 만드는 등, 우연을 필연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니닉스럽다’ 라는 말도 창출됐지요.
2막
작업이 계속됨에 따라 니닉이 지평으로 삼는 장르인 개념 공상미술,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와 기존의 컨셉추얼 아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됐어요. 기본적으로 과거 컨셉추얼 아트의 정의를 전제로 하지만,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창조성의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영화나 게임의 컨셉 아트나 컨셉 디자인 등도 실무의 연장선으로 굳어진 컨셉추얼 아트예요. 상업적 컨셉추얼 아티스트들도 스토리텔링 능력과 매체에의 이해도, 창의성을 평가받고 있죠.
개념 공상미술을 하면서 세계관을 지니게 되면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 서사성이 발현돼요. 좋은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매체를 자극하고 재료나 방식의 혼합 내지 화합을 시도케 하는 동기가 되죠. 고전 매체와 디지털 매체, 즉 미술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예요. 미디어 컨텐츠의 발전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협업, Collaboration으로 확장됐고 이들 상당수는 도전정신을 요구하고 있죠.
컨셉추얼 니닉 작업에서도 협업의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부각되고 있어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영상을 제작할 때, 전시 설치를 할 때, 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머, 음악가, 전기와 구조물에 밝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겠죠.
예술가만큼 자신과 뜻이 맞는 훌륭한 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아직은 생소한 개념 공상 미술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 을 하루빨리 정의 짓고,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3막
상상의 이야기, 니닉이 시작될 무렵, 가상의 이론을 먼저 하나 만들었어요. 뇌의 한 특수한 요인이 모든 창조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내용이에요. 이 요소는 비판인자라고 이름 붙였어요. 비판인자는 필연적, 우연적 공상들을 사슬처럼 엮어가는 브레인스토밍 활동이에요. 특징이라면 창조 에너지의 성질을 이분화 한다는 건데요. 창조 에너지의 이분화가 거듭되면 프랙탈처럼 퍼져나가 보송보송 브로콜리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요. 이 현상이 팽창과 동시에 진행 축에 따라 수직적으로 성장하며 역사성을 가지기 때문에 브로콜리 트리라고 불렀죠.
브로콜리 트리가 니닉과 결합하면서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관으로 이어졌고, 이에 영감을 얻어 탑이라는 형상이 나타났어요. 이때부터 탑은 니닉의 세계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많은 것들을 상징하고 작품에도 영감을 준 중요한 요소가 됐죠. 그리고 이 탑에서 가장 오래된 첫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니닉인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 도록 11쪽 SYNOPSES 중 달파 전설, 전설 이전의 전설
니닉의 즐거운 에피소드들은 나무로 치면 기둥에 해당되죠. 그 뿌리는 평소 제가 바라는 신성과 희망으로 빛나는 모습이 아니라, 의외로 암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성향을 가져요. 그리고 이런 부분은 니닉의 시스템에 가깝고 가장 추상적인 부분, 즉 무의식과 맞닿아 있죠. 전 이에 해당하는 작업을 빌 니닉이라는 서브 주제로 따로 부르고, 깊게 뿌리 뻗어나가게 하기로 했어요. 이 검은 뿌리 덕분에 푸른 가지들이 펼쳐질 수 있는 거니까요.
이야기는 자라고 자라났어요. 네 개의 별이 있는 우주가 생성되고, 니닉 세계의 시초가 되는 고대 종족, 미누와 빌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카와 니와 도구모라는 형상들의 여섯 분신, 즉 여섯 쌍둥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니닉의 연대기가 정해졌구요. 여기서 카와 니는 서로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 형상들이었어요. 결국 그 둘의 만남이 우주의 의지로 받들어진다는 것이 이야기의 가장 큰 주제나 다름없어요.
니닉의 팽창은 천 개의 이름을 짓는 작업으로 절정에 달했죠. 니닉스러운 어휘들을 모두 모아서, 니닉 세계의 도시와 장인들의 이름을 천 개 넘게 만들었어요. 이 이름들은 오리지널, 기존언어, 합성어의 세 종류로 나뉘어요. 오드나타라는 시공의 문을 닮은 꽃의 이름, 카, 니, 도구모, 그리고 빌 니닉에서 빌(검다, 어둡다)은 모두 오리지널 니닉어죠.
마지막
니닉의 미래는 현재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요. 방대해진 내용으로 형체를 얼추 완성시킨듯하지만, 그 영혼은 아직도 이 작업공간에서 형성되고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지난 십 년이라는 시간도 한 세계를 만드는데 들 법한 시간인 것 같아요.
이 세계의 연대기도 계속계속 자라기 위해서는 대나무처럼 마디처럼, 전환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학업과 작업을 통해 마디들이 생기고는 있지만 몇 번의 전시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어요. 지난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니닉을 생각하기 위해서요.
이야기꾼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이토록 조물주의 기분에 취할 수 있는 일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요?
흙이 가진 영성, 고대로부터 이어진 미술의 양식이 누리는 무한한 서사성. 아마 흙을 선택했기 때문에 ‘니닉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했지 않았을까요?
흙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데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찌 됐거나 전 목적지가 분명했거든요. 언젠가, 제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절 완성된 니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서광민(당시 연세대 재학) 탑의 탐험장치에 대한논의
인터벌 쇼 (가제, 1차 편집본) Interval Show
타입랩스 촬영, 8초당 1컷 (time-lapse sequence, interval of 8 seconds)
00:16:43
2012
코일링과 벽돌쌓기로 탑을 성형하는 전 과정을 타임랩스촬영(저속촬영)으로 찍었다. 제작과정을 빠르게 압축시켜 기록하여 보는 이들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