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글 모음 Work Notes

 

 영감은 예술가의 혼이 구하는 만나,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지지는 예술가의 뜻에 내리는 단비.
니닉은 결코 홀로 만드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니닉의 미래를 믿고 힘을 보태주는 모두에게 감사한다.

 

2017년 정유년, 은유로운 그릇 (2017. 01) (미완)

<영성의 시대>

우리의 깊은 무의식은 과거에 경험했던 문화의 양분으로 다져진 터다. 일찍이 변환을 마친 과거의 에너지 중에는, 너무 오래 되어 줄거리를 잊어도 그 메시지는 어느새 소화되어 정신의 일부분이 된 영화들도 있다. 어릴 적 다 자라지 않은 눈으로도 유사 성향의 영화들이 가지는 비슷한 향수는 구분이 되었다. Green Mile(1999), The Shawshank Redemption(1994)의 감수성(두 영화의 감독이 같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이를 닮은 또 하나의 영화, Powder(1995). 어두컴컴한 방에서 생소한 충격에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뿐이지만, 어떤지 이 영화의 제목만큼은 잊어지지 않았다.

피부에 색소가 없이 태어나 ‘파우더’라는 별명을 갖게 된 남자주인공. 어머니가 그를 임신한 채 번개를 맞은 탓에 온 몸에 전기가 흐르기까지 한다. 수천 권의 책을 외우는 천재이며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Inside most people there’s a feeling of being separate. Separated from everything. And they’re not. They’re part of absolutely everyone and everything.”
파우더의 이 대사는 마음속으로 서로가 분리되어있다고 느낄 뿐, 사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의 일부임을 알려준다.(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를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그는 편견을 지니고 자신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냥하게 대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이해했던 소수 사람들의 배웅 속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고 만다. 파우더가 번개 속으로 사라지기 전, 그의 지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것이 자명해졌다고 말했지만, 너를 보면 언젠가는 인간성이 기술을 뛰어넘을 것 같다”고 말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형이하학적 존재를 포기하는 결단을 통해서 비로소 전할 수 있었던 이 ‘작은 희망’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서야 이 영화가 내 무의식 속 ‘통합의 의식’의 양분이 되었음을 확신했다. 괴짜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이 영화의 덕이었으리라.

<수행력과 도자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성, 인간성의 부활이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알쏭달쏭한 수수께기를 하나 받았다. 다가올 영성의 시대를 맞아 내가 작가로서 해야 할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며칠 동안 숙제를 하듯 풀어보았지만, 결국 이렇다 할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나마 떠올랐던 것은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에서 연상된 ‘선물’이었다. 비록 주력분야가 물레를 차고 생활용기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도예기술을 이용해 막상 가족과 친구들에게 흔한 컵 하나, 접시 하나를 만들어 준 적이 없다는 데에 늘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기(器)의 ‘담는다’는 포괄적인 개념을 무척 좋아하여 대학 시절 리포트 주제로 삼을 정도였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기의 형상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 아닌, 이야기를 담는 ‘탑’으로 발전해갔고, 그릇을 만들기 위한 기법과도 자연히 멀어졌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생각하면서 가정을 생각해보게 되고, 자연히 음식에, 그리고 식기에 드디어 관심이 생겼다. 인간성은 참 작은 것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가? 또한 사람이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라 하였다. 마음을 다해 만든 식기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만큼 인간의 고유성과 영성의 유지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는 것이 또 있을까? 귀결은 식기로 지어졌고, 이는 결국은 남들보다 조금 느린 공감의 문제였다.

남은 것은 항상 그러하듯, 실천이다.
수행이라 하면 가장 먼저 종교적 수행, 그 중에서도 불교의 참선이 떠오른다. 도공의 이야기는 예로부터 유명하며 이 또한 수행력이라 볼 수 있으리라. 도공은 조용히 빚는다. 손질하고 유약을 입혀 불을 지펴 구웠다. 미술과 공예가 다른 분야처럼 인식되려고 애쓰고, 도자가 쇠퇴하는 이 시점에서도 나는 잘 알고 있다. 흙작업을 하다보면 벽돌을 하나하나 쌓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미완, 줄임)

 

<예술과 기술의 차이는 기존의 틀을 깨느냐 마느냐의 차이>

 

 

작가의 글 1
 
 
‘FIGUREHEAD’ 선수상: 배의 앞머리에 붙이는 사람이나 동물의 상像
 
 
<배와 선수상>

인생의 긴 여정 중에는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최근 작업실을 이전하면서* 내게도 그 순간이 찾아온 듯하다. 예술가로서의 삶이라는 바다를 이제쯤이면 꽤 멀리 항해해왔으리라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다사다난한 십 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처음으로 미지의 목적지를 그리던 항구에 내가 그대로 서있다. 그간의 열정을 통해 바다를 가로질렀다 생각했지만 이제야 한 척의 배를 얻었고, 그 배를 타고 비로소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본격적인 출항에 앞서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았다. 순항을 기원하고 배에 고유성(character)을 부여해줄 배의 수호상, 선수상(船首像, figurehead)을 제작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새 작업실의 이름은 새로운 세상을 상징하는 ‘니닉(Ninnik)’과 탈것, 기술, 힘 등을 의미하는 ‘크래프트(craft)’를 조합하여 ‘니닉크라프트(Ninnik Kraft)’라 지었다. 배를 닮은 건물의 외관이 이름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선수상과 토테미즘>
 
세계 각지의 선수상의 역사를 보면 정착 이전의 삶 속에서 피어난 뿌리 깊은 토템 신화를 읽을 수 있다. 인디언의 카누에 장식된 동물상, 바이킹의 용수상, 중세의 대항해시대를 누빈 배들의 앞길을 이끈 여인과 신의 형상, 신화 속 신들을 본딴 동양의 선수상, 그리고 우리 거북선의 용수상까지, 형식은 다양해도 잔잔한 바다, 안전한 항해를 위한 인류의 기원과 믿음은 한결같았다.
‘심청전’이 풍랑을 헤쳐가는 해신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과,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이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유명한 장면이 선수상을 상징한다는 해설도 존재한다.(실제 타이타닉에는 선수상이 없었다고 한다.) 뉴욕의 자유여신상이 맨하탄에 들어오는 모든 배들의 행운의 선수상이 되어준다는 설도 있다. 고사상의 돼지머리, 상여나 가마의 꼭두, 전통 기와지붕의 추녀 끝 토수, 하늘 높이 솟은 솟대까지도 그 기원을 선수상과 함께 하며, 전통은 끊임없이 계승된다.

남태평양의 신화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는 필연적으로 배가 많이 등장하는데, 어쩐지 눈에 띄는 선수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인 모아나가 섬을 떠날 때 그녀의 사이드킥(sidekick, 보조나 들러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데리고 다니는 동물 캐릭터)인 수탉이 마침 배에 오른다. 수탉은 중요한 물건을 삼켜버리기도, 위기의 순간에 지켜내기도 하며 작은 카누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주인공의 모험에 함께 한다. 어쩌면 깊은 토템문화에서 기인한 영화 제작자들의 무의식이 수탉으로 하여금 카누의 선수상 역할을 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봉황을 닮은 선수상>

고대 모험가들의 기원pray이 담긴 토템 선수상 문화가 나의 상상의 세계 ‘니닉’의 기원origin과도 상통하리라 생각한다.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온전한 화합,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티끌 없는 믿음, 이같은 메시지가 담긴 과거와 현재의 스토리텔러들이 들려주는 판타지야말로 인류의 선하고 진화된 의식을 깨울 것이라는 희망, 이것이 곧 니닉이다.

희망을 싣고 출항하려는 거대한 배(방주), ‘니닉 크라프트’의 앞머리를 장식할 상징물로 새의 형상, 특히 ‘봉황’을 선택했다.
봉황은 부활, 불사, 재생의 공통된 상징이다. 연금술에서 불사조는 ‘대작업’의 완성을 의미하고, 과거의 여러 문명과 국가에서 ‘태양, 은총, 시리우스별, 승리, 신앙’ 등을 상징했다. 중국에서는 기린, 용과 마찬가지로 음과 양을 동시에 뜻하고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서 우주 전체를 나타낸다. ‘분리될 수 없는 화합’을 나타내는 결혼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이원세계에서의 음양의 완전한 상호의존을 상징하는 것이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니닉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카’와 ‘니’라는 두 존재의 재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명제가 있다. 나는 이것을 현실에서는 소울메이트 혹은 짝을 찾는 과정과 유사한 맥락으로 여기곤 했다. 그래서 카와 니의 재회에 봉황이 더 없이 좋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또, 봉황은 니닉의 세상 속 창조물인 ‘조룡’의 모습과도 닮았다. 조룡은 허상의 영물로, 각종 새와 공룡을 섞어 닮은 형상에 그 크기가 무척 크고 모습이 아름다우며 여러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출항>

나는 개념공상예술가*다. 희망적인 메세지, 선한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꿈과 이상이 함축된 공상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관과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양한 시각매체로 구현해 선보여왔다. 추상적 개념을 실체화함으로써 무의식의 감각화, 창조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니닉의 느낌을 담은 새로운 형상(선수상)은 고유성을 증명하고, 앞으로의 긴 항해에의 포부를 새롭게 부풀리며, 주제관에 브랜드 가치를 더해주리라 생각한다.

나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와 전통으로부터 큰 영감을 얻는다. 옛 모험은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고, 계승된 전통은 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드림 스토리’가 바로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니닉이 모험심과 긍지를 잊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현 시대 판타지의 수호상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문득 궁금해진다. 하나의 별에도 나아갈 궤적이 있으니, 지구에 선수상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개념공상예술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오감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창조활동이다.
경험이나 지식보다는 상상을 통해서 지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물질계와 존재들의 이야기를 구상한다. 이 과정의 대표적인 산물로는 벽돌탑 형태의 도자조형물, 종이 팔레트에 그린 그림, 영상, 미디어 협동 프로젝트, 소설 등이 있다.
비슷한 용어를 쓰는 다른 분야나 장르와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미술사조에는 결과물보다 스토리텔링 과정을 중시하는 개념미술(컨셉추얼 아트)이 있고, 영화나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획에는 캐릭터나 배경을 만드는 컨셉아트가 있다. 상상을 표현하는 과정은 컨셉추얼 아트와 비슷하고, 만약 니닉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작품들은 컨셉아트가 될 수 있다.

 

 

작가의 글 2 (방주에 대하여)
 
‘바다나 구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저절로 떠다니는 형태’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것은 목적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 향하는 길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아니함이다. 여기에는 성경 속 이야기가 비유될 수 있는데, 바구니에 실린 모세나 방주를 탄 노아가 그러했듯 여정이란 무릇 흐름을 타고 다니다 자연히 정착하는 과정이지 않은가. 사람의 발에 밟히는 물리적인 길이 아닌, 시간과 공간에 남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족적을 내가 미리 보지 못함에서 나오는 내려놓음이다.

정체성과, 나를 움직이는 흐름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작업기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온갖 질문을 던졌다. 세상의 뜻을 궁금히 여기면서 그 답도 바라보았지만 진실의 상자(사랍, 니닉어)는 열리지 않는다. 굳건해지는 의지만큼 세상과의 유착도 나날이 짙어진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현실에서 느낀 번뇌를 니닉과 대조해온 만큼, 10년 전의 니닉과 지금의 니닉은 같으면서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종종 풍파에 시달리고 그러다 어느날은 거짓말처럼 고요한 변화무쌍한 세상에 내 믿음의 방주를 띄운다. 선한 상상력으로 일구어낸 판타지(허구의 이야기)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영성을 꽃피우게 하리라는 믿음. ‘니닉’ 이야기에 그런 힘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유동하는 커다란 에너지는 파도가 되어 배를 밀어보낸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김 아 영

Room No. 1159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세상’에 살면서 ‘우주’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로부터 가장 가깝고도 먼, 모든 존재의 이치를 담은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주저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한국에서 호주로 가는 것은 세상의 일이고, 시간과 차원을 넘나들고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주의 일로 여겨진다.
우주를 통틀어 볼 수 없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과거로 인해 우울해하고,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기 일쑤다.

우주를 바라보고자 하는 예술가의 작은 행성에도 삶은 혜성처럼 날아와 부딪친다.

문득, 삶이 개입한 예술이 영화의 세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역적 동상이동을 반복한 끝에 하나의 귀납적 타협점을 도출해내는 과정, 더없이 현실적인 그 과정을 거친 새로운 시공간은 익숙해지면 삶이요, 낯설면 우주다.
영화 속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에는 저마다 숨은 이야기들도 많다. 실제의 공간과 물건들도 시간을 거슬러 관찰해보면 색, 크기, 형태를 선택함에 있어 그 존재의 필요성과 배경을 섬세하게 고려한 것임이 드러난다.
이렇게 특별한 시간을 거친 공간이기에, 사물 하나하나마다 세상과 우주의 딜레마를 품고 있는 것이다.

우주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 ‘우(宇)’는 시간을 뜻하고 ‘주(宙)’는 공간을 뜻하는 글자라고 한다. 따라서 시공간을 의미하는 ‘우주’는 좌표 이전에 이미 문자로 그 개념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사건을 기술할 때 위치와 시간을 함께 지정해서 (x, y, z, t)로 표시하는 시공간 좌표가 존재하지만, 이 역시도 얼마든지 직관적이고 문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태풍에 이름을 붙이듯, 예를 들어 400년 전 폭포가 있던 곳의 좌표는 어쩐지 ‘사로품포’라고 불릴 것 같다던가, 이렇게 말이다.

지금의 1159호가 있는 이곳 갤러리의 4년 전 좌표는 ‘이상동몽'(2012년 김아영, 김유석, 박유정 작가의 전시 제목)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우리의 시간도 비밀스럽게 흐르기 시작했었다.
각자의 세상을 살며 우주의 한 부분을 채우다가 4년 만에 다시 만났고, 각자의 삶이 있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었던 동상이몽을 나누었다.
2016년 10월 16일, ‘세상’과 ‘우주’의 딜레마를 겪고 탄생한 공간은 시간여행자들이 묵어가는 방이라는 설정의 ‘Room No. 1159’이 되었고, 우리의 새로운 좌표가 되었다.

세상의 과거에 미련을 가진 사람들, 미래를 조바심 내는 사람들이 이 좌표를 찾아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Room No. 1159에 머물렀던 시간여행자들이 그러했듯, 열린 마음과 인내심으로 시간 속에 숨겨진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 아 영

 

 

 

 

조금 다른 느낌의

개념공상예술가 김아영의 형이상적 자기소개서 (2016. 9)

 

35년이란 세월이 축적된 나의 자화상은 언어적인 요소들로 밑그림 그려지고 꿈, 의미, 진리, 희망 등 수많은 형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채색되어 왔다.

주관이 뚜렷해 사회의 기존 잣대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것은 종종 현실성과 관련하여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의 가치가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어릴 적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고 불평하고 반대로 내 개성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넓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내 고민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자신의 주관을 현실 속에 펼쳐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비상업적 예술활동 역시 사회의 잣대를 멀리하려 노력하고 있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의 가치가 무한함을 나는 믿고 있다.

천진난만한 나였기에, 최근에야 사회 속 다양한 풍경에 눈이 뜨이면서 흔히 말하는 인간사의 애환에 대해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당황스럽게 혹은 당연하게, 그것은 나를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고 동요하게 만든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그런 그들 속에 녹아드는 느낌을 받을수록 지진에 몸을 가누지 못하듯 내 본질에서 벗어남을 체감했고 너무도 불안해졌다. 무엇을 하든 옮고 그름에 자신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의 말에 의지하게 된 시점에서, 나는 절실히 주관을 필요로 했고 변질된 부분을 되살려내고자 했다. 주관은 사람이 하는 모든 언행에 진정성을 입혀주고 나와 맞지 않는 것을 걸러주며 운명의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이지 않은가. 때론 휘어지고 잘려지거나 다듬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새살을 내고 맷집을 붙여 견고해지는, 그런 나무기둥이다. 형이상의 추구란 아마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나는 나여야만 하는 것이다. 분명한 형태를 찾기 위해 헤매는 과정이다.

나의 주관대로 우주를 말한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살면서도 우주라는 단어를 말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각자의 존재와 세상의 이치를 담은 보이지 않는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나는 우주를 상상해서 ‘니닉’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바구니 속에 담긴 것을 궁금해 하는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상상 속 새로운 세상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자!

 

김 아 영

“세상을 존속시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믿음이다.”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 Synthetic World Archive –
보이는 것 속에 숨겨진 것들의 아카이브, 인공 합성 세계

– Inspirational Introduction –
산업화 속에서 증발하는 창의적 스토리텔링과 현 미디어아트의 기로

다 빈치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힌 천재였다.(위키피디아)
지금도 우리 세상에는 소위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업적이 가히 과거의 그만큼이나 창조의 수수께기의 해답에 근접하고 있기에 그러한 수식어가 붙었을 것이다.
테오 얀센은 생명의 은유라고도 하는 키네틱 아트를 통해 무생물을 생물화하고 그렇게 탄생한 생물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진화의 연대기를 창조했다. 토마스 헤더윅은 스케일에 상관없이 그의 모든 작품 속에 공예적인 인간미와 장인정신이 스며있다고 평가받는다. 장인정신이란 인간의 문화의 진화를(문명의 진통을) 함께 겪은 산물이기에 창조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창조란 긴 시간을 통해 진화할 수 있는 물리적, 개념적 산물을 의미한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극의 감지sense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섭취adoption되고 소화synthetic되어 또 다른 양상으로 유기적 계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만 진정한 창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미디어아트의 현 주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의 공간, 가상의 공간이 어떻게 생명의 은유를 담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자극적인 요소들로 공간을 채우고 강렬한 첨단 기술을 동원해 즉각적 반응을 요구하는 데 그치는 미디어아트에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비단 미디어 아트의 문제만은 아니다. 순수 미술은 오히려 기초적 미디어 요소와 결합하고 그것이 진정한 통합을 이룬 진화한 미디어아트인 양 안주해버리는 오류를 심심찮게 범하고 있다.
단순히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기술의 재현인가를 구시대적 문법으로 해석하고 정의하자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떠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러한 예술과 기술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체험을 관객이 자신의 일상에 어떻게 재현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대중이 그들의 일상에 어떤 콘텐츠를 개입시키는가 하는 것은 즉, 무엇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콘텐츠로써 긍정적인 산업적 양상을 보일 수 있는가의 질문과도 일맥상통하리라.

한 의원이 현 산업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생산성 향상을 이룩하며 시대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달려온 것이 인류 역사인데, 지금 인류에게 닥친 문제는 달리고 안 달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달리던 ‘길’이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며, 그래서 앞서간 사람들이 되돌아오기 위해 뒤쳐졌던 사람들(디지털 하위계급)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모른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 산업화를 바라보는 이 새로운 관점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소셜 픽션’이라는 책은 지금 한국사회의 민주화, 산업화 모두 과거의 어떤 상상의 결과물이라 말하고 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소비적 재미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창의력, 상상력이 증발되고 있는 이 시대에 미래를 위한 현재의 상상력 고갈은 사람들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창조를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이 예술적 근본가치(본디 먼 과거에는 말, 언어가 예술양식의 주도개념이었다. 신성을 표현한 서정시, 서사시, 연극드라마, 문학으로부터 예술이 지금의 장르로 분화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를 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Discourse and Precedential Prototype –
계획작의 전신과 배경

결국, 어떠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러한 예술과 기술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체험을 관객이 자신의 일상에 어떻게 재현하도록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야말로 미래의 다 빈치에로의 열쇠가 된다.

필자는 순수시각예술-공예와 디지털미디어-기술이라는 원초적 질료와 첨단 질료의 사이에서 그 둘을 연결시키기 위한 툴tool을 찾고자 새로운 장르를 파고들어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의 배경에는 필자의 오래된 염원이 담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구현해내겠다는 믿음이 내재한다.
완전히 새로운 허구의 세상을 작품의 모티브 내지는 근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에 다다르는 우리 인생과 정신의 어느 한 곳에 쌓아둔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아카이브를 상징하는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관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2012년, KCDF 갤러리에서 열린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 전시에 둔가라 탑이 등장했다. 둔가라 탑은 니닉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없이 높은 탑으로, 그 세상은 수직적(높이)이고 병렬적(수많은 벽돌)인 성격을 가진 작가의 장인정신의 모토가 반영된 가상의 공간이자 무대다. 탑은 또한, 니닉 이야기의 발원지이고, 그 상상의 세계는 작가의 모든 작업의 근원이 되는 소재의 보고다. 니닉의 캐릭터, 에피소드, 세계관 등이 그려지고 빚어지고 재생되면서(영상),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총 4권의 판타지 소설로 집필이 계획되었고, 그 중 1권이 2013년에 소개되었다.

둔가라 탑은 미디어 콜라보레이션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본래 흙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즉흥적으로 축조하는 방식의 이전의 탑 조형작업은 벽돌이나 건물 디자인의 세부적 특징이 바깥쪽에만 남고 내부의 벽은 벽돌과 벽돌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밋밋하게 문지른다. 그러나 2012년의 탑은 겉은 별 무늬가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지만 내부에 벽돌과 문양 등이 남아있게끔 계획되었다. 그리고 바깥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부의 디테일을 보기 위해 탑 속에 모터와 와이어, 자동차 후방 카메라와 소형 LED를 이용한 작은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설치했다(미디어 아티스트 김유석). 이때, 회로기판을 통해 모터가 조이스틱과 연결되어 관객들이 직접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되었고, 그렇게 해서 카메라에 잡힌 탑 내부의 모습은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TV 스크린에 비춰졌다.

위 프로토타입의 성과와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우선 탑 속 엘리베이터를 상하 360°로 자유롭게 조종하며 모험이 가능했던 점은 호응도와 참여도가 높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와이어가 엉키거나 좁은 탑의 내부에 꽉 차는 엘리베이터가 간혹 걸리거나 하는 기술적인 문제점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흙을 사용해서 벽돌 탑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설치를 고려한 디자인의 연구가 더 필요함을 직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크게 아쉬웠던 점은, 본래 탑 속의 일정 부분에서는 특정 캐릭터나 영상을 합성시키기 위한 증강현실 기술이 도입되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시간적, 경제적 이유로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 The New Synthetic World Archive Tower with Media Craftsmanship –
본 프로젝트의 제작과 활용가치

Craft라는 말은 고대영어 혹은 독일어 kraft에서 기원하며, 지금의 영어로는 기술, 공예, 작은 배나 우주선 등의 뜻으로 쓰이고 독일어로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각종 능력, 힘의 뜻도 가진다. 공예적 장인정신을 의미하고 탑을 오르내리는 작은 탐사선을 가리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창조의 무한한 힘을 나타내기 위해, 본 프로젝트에는 Craftsmanship을 부제로 두었다.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앞서 소개한 둔가라 탑에서부터 미적, 기술적으로 월등히 업그레이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크게 세 부분으로 그 진행을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조형 작업은 본인만의 벽돌쌓기 기법을 사용한 수직적 건축물을 기본 골조로 하여 내부의 다양한 세부 장식을 디자인한다. 이때 증강현실의 마커가 될 부분에 대해 사전계획 및 연구가 병행된다. 증강현실의 콘텐츠가 조형작업의 규모를 크게 좌우할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로, 장치 및 기술구현 작업은 효과적이고 완성도 높은 설치 및 스크린 프레젠테이션을 고려하여 기술 자문, 회의 등을 거쳐 제작한다. 주요 적용기술로는 기존에 경험이 있는 엘리베이터 구현보다는 증강현실의 구현에 초점을 맞춘다.
최종적으로 전시장 혹은 공공장소에 조형물과 미디어 3~4 세트(시리즈)를 가변 설치함으로써 일반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즐기도록 한다.

본 프로젝트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놀이공원을 떠올려보면 좋다. ‘신밧드의 모험’ 놀이기구를 탄 사람은 물길을 따라 지하동굴을 탐험하면서 디오라마의 세계를 체험하고, 이 프로젝트에서는 높이 솟은 기묘한 탑 속에 숨겨진 방, 캐릭터, 에피소드 등을 현실에 직접 레이어 된 증강현실로 체험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일회성 전시로 끝나지 않고 미디어 기반 건축 오브제에 계속된 이야기의 첨가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해서(증강현실을 이용한 아카이브 합성세계) 관객들에게 세계관의 업데이트를 제공할 수 있다. 마치 매주 애니메이션의 다음 화를 기다리는 것처럼, 혹은 뮤지션의 다음 앨범을 기대하는 것처럼, 예술작품도 지속적 연재를 고대하는 대중의 심리를 충족시킨다면 살아있는 콘텐츠로써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리고 미디어 아트의 첨단분야에서는 온갖 실생활에 필요한 사물과 고급 기술이 만나 그 가치를 높이지만, 막상 대중적 미디어아트는 기존의 것을 부연 설명하는 소통장치의 기능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설령 소통의 기능만을 위해 사용된다 해도 아직은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 등에서 이러한 기술을 상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에 이와 같은 미디어 장치와 기술을 사용한 아카이빙 구축은 머잖아 클라우드 시스템과 같은 맥락으로 도래할 데이터 보존 및 전달의 신세계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므로 꾸준히 도입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김 아 영

Artist Statement (KR)

“창조란 긴 시간을 통해 진화할 수 있는 물리적, 개념적 산물을 의미한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극의 감지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섭취되고 소화되어 또 다른 양상으로 유기적 계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만 진정한 창조인 것이다.”

우리가 속한 3차원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창조의 질료는 우리 차원의 각종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꾸준히 행하는 창작의 일련과정에서 그러한 창조의 질료들을 다룰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존양상과 나만의 상상의 공통분모가 되는 언어들을 한데 섞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무한한 은유와 장인정신의 결합, 미술·공예와 디지털미디어·기술이라는 원초적 질료와 첨단 질료의 혼합 등, (본래 하나에서부터 파생되었을지도 모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를 이을 방식tool을 찾고자 새로운 장르, 개념공상예술을 연구해오고 있다.

이 연구의 배경에는 나의 오래된 염원이 담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구현해내겠다는 믿음이 내재한다. 완전한 허구의 세상을 영감의 근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우리 인생과 정신의, 무의식에 다다르는 어느 한 곳에 쌓아둔 이야기들을 말이다. 시간이 흐르자 그 이야기들은 이내 상징적 아카이브,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탑의 형상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탑은 새로운 세계와 그 세상의 비밀을 담는 그릇이 되었고,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 담긴 모습content에 대해서는 그저 상상을 통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이 동기가 되어, 높이 솟은 기묘한 탑 속에 마법 같이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기 위한 흙과 미디어의 모험 도구를 기획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다만 해결책의 제시가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진정한 창조도구의 좋은 실험적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

김 아 영

 

 

Artist Statement (EN)

“True Creator would make physical, conceptual products that organically inherit to different types of creation over a long-time progress of consumer’s adoption and synthesis, not just a sensible momentary thrill and spectacle.”

The 3D World we belong has many creational materials that are often used to exceed the limits of our own dimension. When dealing with those creational materials for my own persistent Ninnik-incubating progress, what I consider most important is mixing the common languages of between existing aspects and my curiosity. I especially focus on fusion of metaphor and artisan spirit, and study for the right tool to connect the most primitive material and the most advanced material; fine arts·crafts, digital media·skills.

In the background of this study has been immanent faith in realization of my desirable imaginary world, Ninnik. As time passes, the fictional sources reach the subconscious of my mind became to build vertical and parallel philosophy, a shape of tower, that established symbolic archive of imaginary stories.

The Tower eventually became a vessel to contain the secrets of the new world, but we could only imagine the contents inside the vessel. This became the motive of an adventure device, made of clay and media, for exploring the magical stories hidden inside the mysterious tower. I hope it will be the fine experimental beginning of developing the true creational tool that can inspire people.

Kim Ah Young

태양을 도는 지구, 지구를 도는 달, 목성의 달 가니메데, 토성의 달 엔셀라두스,
그리고 나의 달 ‘니닉’

어떤 것이 자체로서 무게가 생기고 그로써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 순식간에 그것의 주위에는 어디서부턴가 눈부신 궤도의 안내선이 휘몰아 뻗어나가고 그것은 스스로 움직이기 위한 시동을 걸게 된다. 그러나 첫 궤적을 그리기 시작하는 그것이 곧장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빛나는 길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고, 이 빛나는 길이 처음과 끝이 없이 무한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힘을 다하는 그 어느 날까지 쳐다봐야만 하는, 그것보다 거대한 체구의 어떤 존재가 그것의 한 삶에 끼어들었다는 것, 그 존재를 그것은, 외면하고자 하나 바라보고, 저주하고자 하나 열망하고, 탄식하고, 그러나 끝까지 지키고야 말게 돼버린다는 것이다.

니닉 세계의 우주에도 ‘단달’의 주위를 도는 푸른 별 ‘슈자라’가 있었다. 슈자라는 한때 아름다움과 힘이 넘치는 생명체 ‘미누’ 종족을 그 품에서 길러냈던 기원적 순수에 가까운 별이었다. 어느 날, 미누는 이웃별로부터 건너온 ‘빌가’ 종족에 의해 몰살당하게 되는 처참한 비극을 맞이했고, 시간이 흘러 그 누구의 숨소리도 울리지 않게 된 푸른 별은 스스로도 죽음에 이르는 긴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단달의 우주의 많은 존재들이 그러한 슈자라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별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슈자라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
그때, 니닉의 우주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슈자라를 돕는 많은 힘에 의해, 어떤 특별한 돌 하나가 슈자라 곁의 우주공간에 자리 잡았다. 돌은 솜사탕처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우주의 기운을 스스로에게 엉기게 만들었고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그것이 어느 무게를 넘어섰을 때, 그것의 주위에서 어디서부턴가 눈부신 빛의 궤도가 펼쳐졌고, 돌은 선명한 주황색 빛을 발하는 어엿한 별이 되어 있었다. 별은 힘차게 첫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궤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누비고 나아가며 처녀항해의 벅참과 생동감을 떨쳤다. 별의 궤적에는 희미한 주황의 빛꼬리가 남았다. 빛꼬리가 이루는 둥그런 고리의 모습, 그것은 니닉의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는 듯했다- 새롭게 탄생한 이 주황색 별이 이제 슈자라의 주위를 도는 위성이 되어 그의 희망을 지켜줄 것이라고.

지구상의 현실은 꿈, 공상, 희망과 같은 여러 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니닉의 세계는 나의 달이면서 이 지구 세계의 달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주위를 도는 환상의 위성. 작은 꿈의 조각이 살을 지워 만들어낸 인력으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볼 수 있기까지, 지금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니닉은 더 이상 내 주변을 방황하지 않는다. 니닉은 내가 삶의 궤도를 유지하기 위한 강한 인력의 모성이 되어주었다. “달콤한 낮잠-Siesta-에 취한 장자는 나비가 되었다.”

 

김 아 영

둔가라 탑과 세 개의 보물
DOONGARA TOWER & Three Treasures

퀘스트 QUEST : “세 개의 보물을 사용해 탑의 꼭대기에 갇힌 공주를 구출하라!”

‘니닉’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니닉 나라에는 아주 신비한 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높이가 너무 높아서, 탑의 끝은 구름에 닿아있었고, 탑 속은 방도, 계단도,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어요.
니닉 나라에서는 그 탑을 ‘둔가라’ 탑이라고 불렀습니다.
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어요.

니닉 나라에는 공주가 하나 있었습니다.
공주의 이름은 ‘님벨’이었어요.
호기심 많은 공주는 혼자 둔가라 탑에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마법에 홀려, 그만 탑의 맨 꼭대기로 끌려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대로 탑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니닉 나라의 많은 모험가들이 님벨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섰어요.
그러나 탑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갖가지 방법으로 탑에 오르려는 모험가들을 방해했습니다.
모험가들은 공주를 구출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먼 다른 나라에서 온 한 상인이 니닉 나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이국의 신비한 물건들을 사고 팔았어요.
큰 도시의 광장에서 보따리를 풀던 상인은 근처에서 모험가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바로, 둔가라 탑에 갇힌 님벨 공주를 구출하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상인은 모험가들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신비로운 이국에서 들여온 세 개의 보물을 사용하면 그 탑에 올라갈 수 있을 걸세.”
모험가들은 일제히 상인을 주목했어요.
“세 보물은 톨라, 파그라, 흘리바라라고 하지.
톨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면 어떤 것으로든 자랄 수 있는 씨앗과 같은 것이네.
땅 속에 묻고 빛과 물을 주면 원하는 대로 자라나지.
파그라는 한 번 불을 붙이면 천 년 동안 꺼지지 않는 장작이라네.
파그라는 가짜가 많아서 속기 쉬운데, 이것은 진짜일세!
흘리바라는 숨을 불어넣으면 습기를 머금은 구름을 만들어낸다네.
숨을 불 때면 마치 악기처럼 소리도 내지.
이 세 가지 보물을 잘 조합하면 하늘에 닿는 곳 어디라도 올라갈 수 있다고 전해지네.
당신들은 운이 좋구려, 마침 내게 그 세 가지가 모두 있으니 말이야.”
상인은 흔쾌히 톨라, 파그라, 흘리바라를 니닉의 모험가들에게 내주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다만, 세 보물을 조합하는 비법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다네.
자네들이 생각을 합쳐 방법을 찾아내거나, 그래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다른 세상에 사는 자들로부터 지혜를 빌려야 할 거야.”

니닉 나라의 모험가들은 세 보물을 바라보며, 어떻게 조합하여 높은 둔가라 탑의 끝에 올라가 님벨 공주를 구출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도 니닉의 모험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빌려주세요!

 


 

작품 해설을 위한 “둔가라 탑과 세 가지 보물”

이야기와 도자건축조형의 만남, 그리고 체험

1) 상상 속 건축형상
‘니닉’이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신화적 토템으로서의 상징가치를 가진 탑을 구현한다. 수직지향의 높은 탑은 고개를 들어 바라봐야하는 그 모습처럼,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려는 기운이 실린 이야기를 쉽게 연상시킨다.

2)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건축형상
새로운 세계에 있을법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그 세계만의 서사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상상의 건축물, ‘둔가라 탑’은 외적 조형미 뿐 아니라 그 내면의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데 관람의 의의를 두며, 나아가 그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모험에 동참해 볼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만든다.

3) 흙으로 만든 벽돌과 아치의 탑
흙이라는 질료는 분명 제작에 있어 제한적인 성질을 가졌지만, 흙의 근원적 표현재료로서의 무구한 역사성은 과거와 현대의 맥락을 통틀어 상통한다. 원시적 건축보다도 더 원시적인 토템, ‘둔가라 탑’은 조형물인 듯, 건축물인 듯, 그 다양한 모습을 통해 도자건축조형의 새로운 양상을 제시한다.

 

김 아 영

“그건 하늘에 있네. 하늘에 그 모형이 있단 말이지.
원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 국가가 보이네. 그 국가를 보면서 그 안에서 살 수 있지.” 
플라톤

니닉, 단어에서 세상까지

2013년은 니닉이 태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모든 것은 십 년 전, 우연히 만들어진 한 단어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도예와 회화를, 뒤이어 호주에서 디지털미디어를 전공하던 중, 나는 평생의 예술 활동에 키워드가 될 하나의 콘셉트를 만들었다. ‘니닉’. 니닉은 신비롭도록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내재된 언어이자, 나만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준이 되었다. 유별되는 정체성을 찾는 길고 고된 성숙기를 거치며 니닉이라는 한 단어는 이야기로, 이야기가 있는 총체예술(개념 공상 예술Conceptual Imaginary Art)로 진화했다.

그 후 긴 시간을, 니닉의 세상을 채울 세계관과 캐릭터, 이야기를 짓는데 열중했다. 니닉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언어가 생성·진화된 과정으로 풀이된다. 먼저 니닉이라는 한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어휘를 창조한다. 그것은 니닉 세계에 있을법한 니닉어의 한 부분이 된다. 캐릭터, 장소, 물건, 상태 등을 의미하는 이름이 된 낱말들은 다시 유래나 에피소드가 덧붙고, 그것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의 모태가 된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니닉 고유명사는 천 개가 넘으며, 니닉어는 순수 니닉어, 기존 언어, 순어와 차용어의 합성어로 분류하고 있다. 무의식에 기초한 이 과정은 니닉 세계관과 그로부터의 창조물들의 성질이 자연스레 언어성, 우연성, 즉흥성, 가상성에 기반을 두게 만들었고, 중심 기둥에서 파생된 수많은 잔가지들의 형상을 이루는 개념구조는 수직적이면서도 동시다발적인 병렬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상상 속 니닉의 이미지 표현에는 순수미술이 주 매개체가 되었다. 흙과 여러 회화 재료들을 사용한 도예조형과 그림, 거기에 애니메이션, 영상 편집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을 했고 탄생한 작품들을 전시회로 발표해왔다. 그리고 고민이 생겼다. 일정 형식으로 표현되기 이전에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원형을 필요로 하는데, 순수미술 방식으로는 니닉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시각은 니닉의 복잡한 내용에 질서를 부여하기는 힘들었고, 자체적인 영감이 너무 강해서 자꾸만 변형되고 확장되려 했다.

몇 년의 작가 활동 끝에, 나는 이야기 전달의 중심에 있는 것은 감각 저변의 텍스트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 니닉 콘텐츠의 본연으로 돌아가서, 과거의 발자취를 망라하고 뼈대에 살을 붙여 원형이 될 소설을 펴내려 한다. 현실의 세상만큼 많은 이름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가득한 니닉의 세계, 그 의의와 가치는 곧 니닉의 캐릭터들이 스스로 이루는 역사에 있다. 가상의 주연들이 살아 숨 쉬는, 상상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의 론칭을 꿈꾸며, 긴 여정 끝에 니닉 세상의 별들이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로 보석처럼 빛나며 사람들의 마음에 작용하는 인력을 지니게 되어 비로소 그들의 우주에 내재된 ‘순수한 의지’를 가슴으로 전달할 그날을 기다린다.

김 아 영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 그 자체니까요. 그리고 참 이름은 사물의 참된 본질이에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물을 통제하는 것과 같아요.” 
어슐러 르귄

1. 진화와 모노리스

ponetive wall
포네티브 스페이스의 두 층에 걸쳐 서있는 가로 3m, 세로 6m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어떻게 새롭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에, 벽의 형태와 왠지 모르게 비슷한 모노리스monolith가 떠오른 것은 행운이었다. 모노리스는  영화 속 가상의 물체로 생명체의 정보를 축적하고 조종할 수 있는 진화의 매개체다. 과거 SF영화의 정보가 강하게 우리의 시간에 새겨졌고, 그 정보를 진화시켜 가상의 캐릭터와 관련된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생명체와 유전자의 비밀을 살짝 엿본 기분이 들어 설렌다.

monolith
SF 영화 ‘2001: A Space Odyssey’1)에서는 모양의 신비한 물체인 모노리스가 등장한다. 원래 모노리스라는 단어는 ‘하나의, 또는 고립된 바위’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유래한 일반 명사로, 돌기둥, 기념비, 오벨리스크 등의 인공물, 그리고 에어즈 락, 스톤 마운틴 등의 거석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노리스는 인간 이외의 어떤 생명체(작품에서는 괴종속으로 불림)의 도구로, 역할은 각 모노리스에 따라 달라서 어떤 생물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있는가 하면 멸종시키기 위한 것도 있다. 모노리스 그 자체의 의지는 없으며, 이를테면 굉장히 발달된 고도의 컴퓨터라 생각된다.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형태는 사각형의 기둥으로 각 변의 비율은 1:4:9 라는 1,2,3의 제곱의 숫자의 비율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인공물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불명. 외관은 굉장히 매끄러우며 흠집 하나 없다. 인류의 기술로는 물질적인 파손이 불가능하다. 색은 기본적으로 검은색이며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는다. 표지 아트와 영화 등에선 1:4:9 보다 두께가 좀 더 얇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2001: a space odyssey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 영화로, SF영화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다. 영화의 의의는 훌륭한 고증과 더불어 인간이 달에 가기도 전이었던 60년대에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광막한 우주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한 설득력 있는 영상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하며 영속적인 우주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 – 스탠리 큐브릭

(자료출처: 위키피디아)

 

2. 캐릭터와 모노리스 (김아영)

몇 년 전, 지인의 전시를 위해 “꽃은 공룡을 기억한다.”라는 제목을 지은 적이 있었다. ‘진화와 유전자’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생김이나 성질이 천차만별인데도 유전자를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부분은 꽤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시간에 따라 유전정보가 축적된다는 것에서 출발한 내용이었다. 우리 인류도 완전히 다른 식물, 동물과 기본적인 구성의 상당부분을 공유한다. 한 사람의 모든 특징과 개성이 0.1퍼센트의 유전자 차이로 결정된다니, 정말 넓게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한식구인 셈이다. 더불어, 유전자는 진화해온 시간만큼의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미의 유전자가 먼 과거 공룡의 정보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명체의 진화라는 개념은 아침, 점심, 저녁의 바쁜 일상 속에서 왠지 위화감을 풍긴다. 우리가 진화해온 백 년은 역사이고, 천 년은 신화이며, 만 년을 넘는 진화는 그렇게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을 수가 없다. 우리 안에 꽃, 공룡, 곤충,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내재되어 있다 한들, 정작 그 복잡하고 신비로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말미암아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아닌 가상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원리로 진화를 설명하는 건 어떨까? 약 3만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류가 지어내는 이야기 속 가상의 캐릭터와 캐릭터의 삶도, 분명 창조자가 사는 시간만큼 변화와 진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니닉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나는 니닉 세상 속의 주인공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그 캐릭터가 가질 셀 수 없이 많을 유전정보들 중에서 외형에 해당하는 열두 가지를 정했다. 그리고 마치 주형을 떠서 그 안에 무언가를 부어 굳히면 비로소 물체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멘디의 생성’에 필요한 몰드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김 아 영

CONCEPTUAL NINNIK

Ninnik is the unique theme of Conceptual Imaginary Art of Kim Ah Young, also is the keyword that in the future will be one complete epic story.

What  Conceptual Imaginary Artists do is detecting connections between things or ideas, establishing certain rules on them, then designing another rules for reasonable activation of possible exceptions. It is a discovery of contingency, and an examination of the identified rules and contingencies to make sure if they are all in balance; then maybe an endless repetition of this whole alchemic procedure. Eventually, they do build a new world upon their own rules.

It has been a decade since Conceptual Ninnik started. During the time, not only the creative activities of Ninnik have been recorded and presented through the exhibitions, but the possibilities and visions that this new world has have also accrued day by day.

I hope the exotic wonders of Ninnik World will advent on our life one day, just as amazingly as a new baby-born.

Kim Ah Young

프리마 비스타 a prima vista(이) at first sight(영). ‘한눈에’라는 뜻으로서, 처음 보는 악보를 준비 없이 바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네이버)

김아영은 십여 년 전 니닉이라는 단어에 한눈에 반해 그로부터 즉흥적으로 니닉 세계를 창조해왔다. 하루면 하루, 일년이면 일년, 삶 속에서 니닉을 잊지 않았다.

올해 4회 개인전을 맞아, 작가는 5년째 전시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그만의 새로운 세계, ‘니닉’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황홀한 상상이 상대(관객)에게 더 잘 전달되도록 다듬고자, 또 생각지 않게 형식에 연연하곤 했던 기존의 작업에서 탈피하고자 마음먹었다.

대형 종이 팔레트에 그린 세 작품은 그런 의지를 가장 잘 반영했다. 처음 니닉이라는 말을 지었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생각과 관심사를, 과거 즐겨 쓰던 재료와 기법으로 마음껏 펼쳤다. 칠판에 필기를 하듯 세계관을 적어나가기도 했고, 다른 세계로 통하는 신비한 아치 문을 그렸고, 직접 지은 니닉 세계의 언어들을 새겨 넣기도 했다. 팔레트라는 말은 화가의 팔레트, 미장공의 흙손, 화물의 받침이 되는 팔레트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팔레트에 ‘가상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의미를 추가했다. 언어는 정의가 아닌 한 세계나 현상의 함축임을 말하며.

“무거운 중량을 견디고 온갖 것들을 담아내는 서로 다른 의미의 팔레트들처럼 니닉 세상을 온전히 지탱해줄 팔레트를 만들었다. 팔레트palette는 프랑스어로 썼을 때에 pallet와 palette의 뜻을 한꺼번에 포함하는 것 같다.”

하나의 단어에서 뻗어나가기 시작한 니닉이기에, 언어야말로 ‘니닉의 원형’에 가까운 매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언어로 기록되는 니닉의 수많은 이야기는 곧 김아영의 모든 작품의 원형이 되는 것이니, 이번에 처음 책으로 엮은 니닉 소설 ‘제1장 청록전쟁 편’은 작가에게는 그동안의 꾸준함과 인내에 기념비를 세우는 일과 같았다.

“인간의 유전자나 언어의 유전자는 똑같다. 조상으로부터 발생하고, 시간을 매개체로 삼아 영역을 넓힌다.”

그 외에도 검정 콘테를 뾰족하게 갈아 그린 세밀한 삽화들이 소설책의 내용을 담아냈고, 작가만의 공식으로 만들어낸 이름과 그에 따른 신성을 가진 열 두 캐릭터들을 마치 이콘화(니닉 세계에 있을 법한 성화)’처럼 표현한 아크릴화도 위 맥락을 이어갔다.

첫 개인전에서 흙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탑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연필, 파스텔, 콘테, 오일스틱이 작가의 열정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천 개가 넘는 동작을 반복해야 할 때도 어느 하나 기계생산적으로 작업하지 않는 작가의 모습은 니닉의 세계를 점차 수놓아 완성해가는 꾸준함과 집요함으로부터 원동력을 얻은 것이리라.

관객들이 김아영의 니닉의 원형에 근접한 작품들을 만나보고 그 세계의 영감으로부터 니닉을 프리마비스타(초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필…흑연은 자신의 흔적을 너무 쉽게 흘리고 남긴다. 자국을 내기 쉬운 것들이라서 인간의 문화를 남기는 데 적절했나보다. 캐릭터character는그리스어에 어원을 둔다. 애초 조각에 새겨진 모양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모양은 글이 되고, 그림이 되고.”

 

김 아 영

둔가라 탑과 오드나타 꽃 Doongara Tower and Odnata Flower

김아영 개인전 2012
컨셉추얼 니닉 3.0 다큐-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
컨셉추얼 니닉 3.1 빌 니닉

2012.08.15(수)~08.21(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층 전시장
(110-300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길 8)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협찬

KIM AH YOUNG SOLO EXHIBITIONS 2012
Conceptual Ninnik Vol.3 Docu – Ninnik Fabrication : vertical×parallel
Conceptual Ninnik Vol.3.1 Bil Ninnik

김아영은 현재 컨셉추얼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니닉을 전시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그의 2012 컨셉추얼 니닉 Vol.3 「다큐–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 개인전시의 도록과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이 책을 엮었다.
전시는 샘플 니닉과 빌 니닉이라는 두 주제 아래 작품들을 선보이고, 특히 니닉의 설정과 에피소드를 모은 샘플 니닉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둔가라 탑과 오드나타 꽃]은 니닉 세계의 모태가 된 전설이자 신비한 모험의 기록이다.
니닉의 세상에 들어서는 모두에게 이 책이 즐거운 지침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 그림, 전시 기획 및 작품 제작  김아영
작품집 기획 및 디자인  김아영
작품집 제작 및 발행  손호승 (dorok.com)

Original Ninnik Artworks by Kim Ah Young
Book Design by Kim Ah Young
Publication Management by Son Ho Seung (dorok.com)

Copyright ⓒ 2010 by Kim Ah Young.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의 내용 CONTENTS

책 정보
작품과 해설 |  1. 도록  2. 작업수필
이야기 샘플 |  1. 청록전쟁  2. 둔가라 탑과 오드나타 꽃 이야기
다큐멘터리 |  1. 대본  2. 크레디트

Book Information
Works and Descriptions |  1. Artworks  2. Artist Note
Samples of Stories |  1. Viridian War  2. Doongara Tower and Odnata Flower
Documentary |  1. Script  2. Credit

작품 구성과 해설 WORK CAPTIONS AND DESCRIPTIONS

본 전시는 니닉의 첫 이야기 구현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순간이 결국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려는 장인의 정신과 맞물려 있음을 밝히고, 그것이 창작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겉모습을 갖추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더욱 다양한 매체로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를 컨셉추얼 아트로 표현한다.
전시의 작품들은 ‘빌 니닉’과 ‘샘플 니닉’이라는 큰 두 맥락으로 구분된다.

샘플 니닉 SAMPLE NINNIK
햇빛을 품은 금빛 은빛의 가지와 나뭇잎. 화려하고 장식적인 분위기의 모든 세계관과 에피소드, 천 개의 이름들과 아직 지어지고 있는 이야기들까지, 이 모두를 한데 엮은 책이 샘플 니닉이 되었다. 이 이야기들에 나오는 배경, 인물, 소품 등이 모두 컨셉추얼 니닉 작업의 소재가 된다.

빌 니닉 BIL-NINNIK
검은 니닉. 눈부신 가지와 나뭇잎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땅에 묻힌 검은 뿌리에 다다른다. 검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심연, 무의식의 저편, 끝없는 우주, 그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을 ‘검다’는 말로 함축한 것뿐이다. 뿌리가 빨아올린 온갖 검은 양분들이 놀라운 연금술의 과정을 거치면 니닉의 여러 이야기, 샘플 니닉으로 재탄생한다.

 


 

1. 도록

<빌 니닉>

▩ 디지털 날염 Digital Print on Silk
빌 니닉 ‘화소도안’ 부적 시리즈 Bil Ninnik ‘Pixelization’ Talisman Series

달이 밝고, 맑고 청량한 공기가 매미와 풀벌레들의 소리와 함께 아파트 계곡 사이를 흐르던 십 년도 더된 어느 여름날 밤. 발코니의 컴퓨터 책상, 의자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은 내가 보인다. 딸각 딸각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함께 새카만 모니터 우주 위에는 하나하나 찍은 픽셀이 얼핏 드러나는 플레이아데스성단 이 그려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도입되던 그 시절, 그림판으로 그렸던 나의 첫 디지털 그림은 화소가 높지 않았다. 화소. 사전을 찾아보니 화소畫素(화면을 전기적으로 분해 한 최소의 단위 면적)는 화소話素(이야기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라는 동음이의어가 있다. 화소, 즉 ‘점’은 존재를 위한 가장 작은 단위를 표현하는 말로 적절해 보인다. 그림과 글이 같은 ‘화’ 음을 가진다는 것도 재미있다.
점은 문자와 문명으로 이어지니 우리가 누리는 것 모두 단 하나의 점에서 기원한 셈이다. 더 작아지고 더 많아지는 점들이 어디까지 그 분열Fractal을 계속할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세상의 밀도가 높아지고 최상Supreme에 대한 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할지라도 그 원형Prime은 사라지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구성을 원형으로 하는 직물Fabric에 니닉의 구성 Fabrication을 표현하는 그림을 나염했다.

▩ 아크릴 페인팅 Acrylic on Canvas
‘빌가의 계략’ 시리즈 ‘Bilga’s Plot’ Series

니닉 우주의 모든 존재들에게 ‘카와 니의 재회’는 가장 큰 관심거리이자 소망이다. 이에 앞서 카, 니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헤어지게 되는지를 아우르는 에 피소드가 있다. 한 종족에게는 절망이었고 머잖아 나타날 한 세상에게는 희망이 된 사건, 바로 ‘청록전쟁’이다.
카와 니는 제삼자인 도구모와 함께 얽히고설키며 운명의 실을 땋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젠가 도래할 접점 Tangency의 때를 기다리면서.

‘빌 니닉 연금술’ 시리즈 Bil Ninnik Spagyrics Series

화소도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Prime에서 Supreme까지, 점에서 문명까지의 변환과정을 연금술의 실험처럼 표현한 그림들이다.

<샘플 니닉>

▩ 도예조형 Ceramic Sculpture
도자와 미디어 협력 프로젝트 Clay & Media Collaboration Project

전시의 가장 큰 주제가 되는 기둥 형태의 벽돌 탑이다.
벽돌 탑의 축조는 대부분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도대체 니닉인들이 세운 탑은 어떻게 생겼 니 하는 질문을 흙에게 던져야 한다.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고된 것은 다 이 때문 아니겠는가, 자신도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다, 그 세계의 실제 모습을.
이번 벽돌 탑은 작가가 만든 기존의 탑들과 다르게 겉과 안을 뒤집은 꼴이다. 유약처리를 하지 않는 탓에 벽돌을 쌓은 부분의 강도를 보강하려면 바깥이나 안쪽 한 부분을 밋밋하게 다듬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다듬어진 부분이 모두 안쪽 이어서 외관에 벽돌의 형태가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 벽돌 탑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지문의 흔적들은 폐쇄된 내부에 남겨두고 바깥을 싹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모험을 위해 탑 안의 빈 공간에는 모터 장치가 설치됐다. 모터는 작은 카메라를 상하, 360도로 이동시키고 카메라는 탑 내부의 모습을 외부 스크린에 실시 간 전송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니닉 세계에 일어났던 일을 잠시나마 체험하고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세 신 중 하나를 섬기던 첨성대, 네골을 봉인한 탑도 함께 전시한다.

 


2. 작업수필

장인과 판타지
– Artisan’s Fantasy –

이야기의 물질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장인공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
이야기라는 것은 물질들이 늘어가는 것. 물질적인 것이 공간을 채워가는 현상. 이에 판타지가 현실로 드러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요소들이 모여 전시를 이루었다.
물질이라는 현실감은 생각과 상상이 원래의 형질에서 다른 형질로 변환되기를 기대한다.

판타지의 겉과 속
그러나 판타지는 여전히 뇌의 창조 활동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장려한다. 상상, 논리, 사고, 연상, 공상, 창의, 직감…생각과 관련된 무형의 무언가를 지키려 한다. 판타지는 그렇게 자라의 껍데기처럼 단단한 보호막이 되어 자신이 감싼 부분을 주위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게 한다.


다시금 탑이 나온다.
벽돌 탑의 축조는 대부분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도대체 니닉인들이 세운 탑은 어떻게 생겼니 하는 질문을 흙에게 던져야 한다.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고된 것은 다 이 때문 아니겠는가, 자신도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다, 그 세계의 실제 모습을.
이번 벽돌 탑은 작가가 만든 기존의 탑들과 다르게 겉과 안을 뒤집은 꼴이다.
이번에는 속을 들여다본다.
긴 모험이 시작된다.

검은 연금술사
– Dark Alchemist –

점의 진화
검은 색을 생각하면 쉽게 점이 떠오른다.
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사람도, 태양도, 그리고 추상적인 상황이나 개념까지도 ‘점’을 가지고 있다.
점의 모양과 성격은 그 해석의 수만큼 다양하다. 잉크의 검은 얼룩은 문자가 되고, 문자는 문명을 이룬다. 교류 또한 점이다. 접점. 니닉 문명의 시작은 모르쇠와 도구모의 만남으로, 끝은 카와 니의 만남과 함께한다. 점이 자라는 모습은 식물의 씨앗이 발아하는 것과도 같다. 점은 눈이다. 점은 운명을 마친 세상이 최후에 되돌아가야 하는 최초의 공간이다.

검은 흐름
단달의 우주 속 제4의 별은 항성 단달로부터 가장 멀어서 매우 어두웠다. 제법 안정된 물질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빛의 부족으로 인해 그 성질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고, 별은 생명 이전의 것들이 뒤엉킨 짙은 그림자로부터 지배받고 있었다. 별의 주민들은 그들의 별을 어두운 지혜, 빌 리크람이라고 불렀다.
단달의 우주는 대 격변을 수차례 겪었다. 첫 번째 격변이 일어났을 때 빌 리크람의 궤도는 단달 가까이로 당겨졌고, 단달의 빛을 흠뻑 받게 된 별은 밝아진 눈, 사 보라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태고의 그림자는 더 이상 넓은 영역을 차지하며 머물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을 여럿으로 나누어 작은 형상에 담아 우주 곳곳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순수한 어둠, 그림자들이 파편이 우주의 이곳저곳으로 향할 때, 그만 형체를 잃고 어중간한 모습으로 헤매는 존재가 생겨났다. 그 중 하나는, 님이라는 별에 도착한 첫 번째 그림자가 되었다. 님에는 어둠의 지혜가 미처 뿌리내리지 않은 원주민들이 소수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변형체는 우선 깊은 동굴을 찾아내 그곳을 은신처로 삼았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수께끼의 또다른 형상을 만나 그 형상 안에 깃들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단달의 빛 아래 드러내기 시작했다.
뿔뿔이 흩어진 태고의 짙은 그림자들은 모두 새 터전에 안착한 듯 보였다. 오로지 빛이 있던 곳에 빛과 어둠의 개념이 생겼다. 단달의 우주는 이 새로운 법칙을 받아들이고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빌 리크람의 짙은 그림자에 기생했던 무시무시한 존재, 심연의 고대원념이 또한 그림자와 함께 온 우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눈치 챈 자는 아직 없었다. 세상은 그 존재들이 앞으로 불러일으킬 일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추출물
님 별의 한 언덕에는 기계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공예품이나 건축 형태와도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세워 둔 것 같은 기계들이었다.
기계들은 각자 한두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멀찍이 떨어진 한 기계를 향해 나 있는 좁다란 길을 한 작은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커다란 정육면체 상자를 두 팔 가득 안고 있었다. 아이는 기계 앞에 다다르자 조용히 말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담아왔어요. 이것으로부터 어둠을 만들어 주세요.”
아이의 부탁에 화답이라도 하듯, 기계가 작동했다. 더러 덜컥거리기도 하며 일말의 과정을 진행하는 듯했다. 아이는 상자를 든 채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기계의 하단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아주 작고 검은 돌이었다.
아이는 상자를 내려놓고 돌을 집어 손에 올려놓았다. 감촉이 부드러웠다. 작고 검고 부드러운 돌은 아이의 손의 온기가 닿자 서서히 움직이며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의 손에는 작고 검은 인형이 놓여 있었다.

검은 것
사람을 다른 동물과 비교하는 가장 편리한 기준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보관할 줄 알지만 가지고 다닐 때도 많다.
큰 가방을 메거나 커다란 상자를 품에 안고 길을 걸어보면, 과연 저 가방이나 상자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하는 궁금증 어린 타인의 시선에 취할 수 있다.
큰 상자일수록 더 큰 공간, 큰 어둠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숨겨진 어둠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품는다. 두려움도 얻는다. 어둠 속에야말로 누구나가 공감하는 진실의 형태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검은 눈에 어둠이 든 상자들을 담고 다닌다. 그리고 그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가방과, 상자와, 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 속 어두운 공간에 있을 신비로운 것들을 상상한다. 가방은 멜라닌 색소처럼, 사람에게만큼은 꼭 필요한 ‘검은 것’이다.

1. 청록전쟁 VIRIDIAN WAR

“서사시의 개요”
네 개의 별이 있었다. 빌 리크람, 슈자라, 님, 단달. 빌-리크람에는 당시 단달계의 가장 고등한 문명, 빌가와 고리가 있었고, 슈자라는 원시 미누족의 터전이었다. 님에는 아직 문명을 이룰 생물이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별들은 점차 모습을 바꾸며 성숙해가는 시기였고, 땅과 물은 자연히 조각나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빛을 내는 항성인 단달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진 행성 빌-리크람에는 어두운 날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알 수 없는 그림자(고대원념)의 세력에 빌가와 고리는 압력을 받았다. 고리는 끝까지 별에 머물며 조화를 꾀했지만, 빌가는 자신들 문명이 소멸되는 것이 두려워 결국 슈자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사전탐사를 위해 슈자라에 도착한 빌가는 그 별의 원주민인 미누족과 타협하려 했다. 그러나 두 종족의 공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빌가들은 고민 끝에 미누족을 멸망시킬 전쟁을 계획했다. 고도로 발달된 빌가의 과학이 낳은 생체무기, 네골이 미누들에게 겨눠졌고, 미누족은 크게 저항하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자신들의 영을 담은 형상인 카와 니를 창조하는데 성공했고, 두 형상을 전쟁의 땅에서 탈출시켰다. 바로 그때, 단달계에 궤도격변이 일어났고 빌-리크람의 궤도가 단달 가까이 들어서며 온 우주를 흔들었다.

청록전쟁

빌가의 사절단은 푸른 별 슈자라에 도착했다. 이주할 별을 찾아 나선 그들은 첫 번째로 빌-리크람에서 가장 가까운 슈자라를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빌가들은 은은한 빛으로 둘러싸인 생명 가득한 푸른 땅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다른 별을 알아볼 것도 없이 그들은 곧 이 별의 구성 물질을 분석하고 선주민의 문화와 접촉했다. 처음에 그들은 선주민 ‘미누’에게 공존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슈자라의 대륙이 그들 고향 대륙에 비해 턱없이 작고, 별에 남아 있는 빌가 모두가 들어와 미누와 함께 살기에는 충분치 않은 자원을 보유했다는 사실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빌가의 사절단은 자신들이 그곳에 정착하려면 미누를 별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또 있었다. 빌가들은 슈자라가 단순하기는 해도 자신들의 고향별 빌-리크람처럼 강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상위의 의식이 확고한 경우 그에 반하는 하위의 족속들은 어긋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마련이었다. 다시 말해, 슈자라가 미누를 땅의 주인으로 인식하는 이상, 그 땅에서 미누와 직접 대치한다면 별과 별의 문지기가 노하여 자신들을 별의 새 입주자로 인정하지 않게 되고 말 것이었다.
그러던 중, 사절단과 함께 온 군단에서 계략에 뛰어난 자가 특이한 전쟁을 제안하며 나섰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난 사절단은 처음에는 그 평화적이지 못한 방법에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전쟁을 실행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그 시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더 이상 사절이라 칭하지 않았다.
빌가들은 미누를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모성에서 가져온 생체과학기기를 이용해 그 두 집단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화시켜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두 생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빌가들은 그들이 광폭한 성질을 가지며 집단으로 행동하는 등의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때까지 계속 진화시켰다.
이윽고 빌가들의 마음에 드는 두 종족이 나타났다. 강력한 두 뒷다리로 움직이고 앞발은 매우 작으며 온통 아름다운 빛깔의 털과 깃으로 덮여있고 단단한 부리를 가진 쪽은 고힘이라 불렀다. 두 다리로 불완전한 직립보행을 하게 된 다른 한 쪽은 잘 발달된 팔과 손이 있으며 몸통을 제외한 부분은 털과 깃털이 전혀 없이 매끈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이들은 모락이라 불렀다. 두 생물이 각자 부족을 이루게 되니 전쟁의 양편 진영이 준비된 셈이었다. 그랬다. 빌가의 군단이 계획한 전쟁은 빌가와 미누 사이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빌가들은 두 생물의 모습, 기억, 성격을 조작함으로써 서로를 적으로 두고 싸우게 만들어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그들을 몰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곧, 두 종족의 안타까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온화했던 푸른 별의 주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단순하고 포악해진 고힘과 모락은 전혀 다른 신체언어를 가지고 있었기에 서로 소통하지 못했고, 이성을 잃은 그들은 빌가가 계략적으로 함정을 설치한 곳에서는 반드시 집단 혈투를 벌였다. 모습은 바뀌었으나 여전히 색은 청록에 가까웠던 그들이 엉키어 싸우면 그 자리에 거대한 초록색 바다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전쟁은 그로부터 한동안 지속되었다. 빌가들은 미누(고힘과 모락)가 싸움 끝에 쇠하기를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결과에 만족스러워했으나 사절단의 임무를 넘어선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 몇몇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탈출

거의 모든 미누가 빌가들의 뜻대로 진화했지만 아주 드물게, 생체무기에 내성이 강한 극소수의 미누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습은 고힘과 모락처럼 바뀌었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가까스로 기억의 끈을 놓지 않고 미누의 혼을 지켜냈다. 빌가의 입장에서 그들은 부적격자들이었다. 빌가는 부적격 미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지 않고 감금해 두고는 그들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시기, 빌가들 사이에서는 작은 내분이 일어났다. 네골의 기능에 다른 종족의 비법을 일부 덧씌워 완전한 생체조작을 가능케 했던 당사자가 더 이상의 비법 사용을 거부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를 계속하면서도 부적격자들을 어떻게 전쟁에 내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해결책을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몇 안 되는 부적격 미누들에게 짧은 단합의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빌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상황에 맞설 방도를 모색했다. 어느 날, 그들은 점차 광포해지는 척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그를 본 빌가는 부적격자들의 진화현상이 다른 미누보다 느리게 진행된 것이었다고 판단했고 안심하여 이내 그들을 전쟁터 한복판에 풀어놓았다. 그들은 그대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서로를 주시하며 밤을 기다렸다.
이윽고 캄캄한 밤이 찾아왔다. 부적격 미누들은 캄캄한 어둠에 싸움이 잦아든 틈을 타 무리에서 빠져나왔고, 이내 비밀스러운 깊은 바위계곡으로 들어갔다. 둥근 원주(圓柱)같은 거대한 푸른 바위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계곡에는 좁고 밝은 길이 꼬불꼬불 이어져 있었다. 액체에 가까운 이 길의 기슭을 따라 계속 들어가니, 자그마한 호수와 그를 둘러싼 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그리고 호수의 중앙에는 작은 물줄기를 허공으로 뿜어내며 무지개를 그리는 작은 돌이 떠 있었다. 이곳은 슈자라의 생명에너지가 응축된 고밀도의 지역으로 미누들에게 신성시되던 지역이었다.
미누들은 호숫가에서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얼마 후면 무지한 몸싸움이 끝나고 그들 종의 운명이 한계에 다다를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간단한 생명체를 만들어 미누의 정신을 담은 뒤 다른 세상으로 도피시키리라고. 먼 훗날 빌가에게 응당한 벌을 내리거나 혹은 그들로부터 보상을 받기를 기원하면서.
고힘과 모락은 각각 공터의 부드럽고 습기 있는 흙으로 미누의 얼굴 크기만 한 두 개의 작은 형상을 만들었다. 형상은 역설적이게도 빌가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어떤 생각에서인지 그들은 그리 했다. 다 만든 두 형체 안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찰나, 그제사 미누들은 그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할 힘이 네골로 인해 변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한 미누만이 슈자라의 깊은 계곡에 잠든 생명에너지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푸른 땅의 뜻을 이미 거슬러버린 그들은 두려움과 슬픔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경계하는 미누들 앞에 처음 보는 어떤 생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빌가과 함께 온, 빌가와는 다른 종족의 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자신도 빌가들에게서 벗어나려 몰래 나오던 중 그들이 숲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슈자라의 미누들을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게 된 것을 진심으로 사죄하며 보복을 각오하면서도 구태여 따라온 것은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고귀한 미누들은 이 낯선 망명자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바라는 것 또한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이 이미 자신의 종족에게는 가망이 없음을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단 하나의 희망을 형상에 실어 다른 곳으로 보내고자 한다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망명자는 자신이 도울 방법이 있을 것 같다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망명자는 자신이 가지고 온 휴대용 도구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능숙하게 고힘과 모락이 만든 흙의 형상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이 미누의 영혼을 전해 넣기 위한 촉매제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 작은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마치자 이번에는 상자에서 작고 속이 빈 둥근 돌을 꺼내더니 그것을 반으로 쪼갰다. 쪼개진 돌을 호수에 잠시 담그자 돌은 순식간에 부풀어 커져서 형상이 들어가고 남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그는 그 돌이 와모라라고 하며, 와모라는 자기 나라 말로 품는 돌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쪼개진 와모라의 한 쪽에 슈자라에서는 나지 않는 붉은 빛깔의 어떤 물질을 넣고 그 위에 형상들을 뉘인 뒤 다른 한 쪽을 뚜껑삼아 덮으니 꼭 들어맞아 열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땅에 묻고는 얼마간 기다리자 땅 속에서 톡톡 하고 작게 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망명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이며 동이 틀 때쯤 저 소리가 멎을 테니 그때 돌을 파내면 형상들이 스스로 돌을 깨고 나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기에 먼저 길을 떠나야 하며, 훗날 자신의 동족들과 후손들은 이 작은 형상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미누들이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흙 한줌을 떠서 주머니에 넣고 통에는 호수의 물을 채우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동이 터올 무렵, 과연 톡톡 튀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곧 완전히 소리가 멈추자, 고힘과 모락은 와모라 돌을 파내었다. 그러자 와모라가 흔들리더니 형상들이 서로 다른 쪽으로 돌을 밀어 깨고 나오는 것이었다. 새카맣게 그을린(미누들은 사실 그을린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형상들은 눈꺼풀과 입이 굳게 닫혀있었다. 호숫가로 가서 물로 씻어주자, 그들은 그제야 눈을 뜨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미누들은 그 형상들을 각각 카와 니라고 이름 지었다.
바로 그날 오후, 마지막 고힘과 모락들은 카와 니를 전쟁의 땅에서 탈출시켰다. 두 작은 형상들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는 북쪽을 향해, 긴 외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누들은 카와 니를 배웅하며 절대로 서로로부터 떨어지지 말도록 일렀다. 그리고 따로 불러서 하나씩 전언을 해주며 상대방에게는 말하지 말도록 했다. 카와 니는 그 두 가지를 그들의 창조주와, 그리고 서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카와 니는 떠났다. 잡은 손을 놓지 않도록 조심하며,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계속 걸었다. 미누는 그들을 창조할 때 서로 몸의 한 부분을 꼭 잡고 걸으라고 빌가의 모습을 본때 네 발 중 둘을 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절벽으로 된 긴 외다리를 지나 별의 문으로 향하는 터널에 들어섰을 때, 싸우던 고힘과 모락들은 갑자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하나둘씩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모든 미누들의 희망, 정신, 그리고 혼을 모두 가지고 떠난 두 형상이 별의 끝자락에 닿자 슈자라에 살아 있던 고힘과 모락들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의 불쌍하고도 불쌍한 동족이 모두 죽고 세상이 무서우리만치 고요해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부적격 미누들도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쓰러져갔다. *

 


2. 둔가라 탑과 오드나타 꽃 이야기 DOONGARA TOWER AND ODNATA FLOWER

“팅통! 팅통! 오드나타의 씨앗에 세공을 해라. 파르륵! 산호장작을 넣은 호롱불에 불을 붙여라. 흘흘! 먼지버섯 포자들이 날아가지 않게 주머니에 잘 모아 담아라.
여기 준비된 톨라, 파그라, 흘리바라여, 탑의 끝에 이르려는 이들을 지켜주십시오.”

“후세가 전하는 둔가라 탑의 역사와 전설”
둔가라 탑은 별 ‘님’의 가장 남쪽 땅에 정착한 님벨 공주가 수도 니말다라를 세우고 자신의 부족민들과 함께 축조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님벨은 선조인 니의 의지를 이어 이 탑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니는 자신의 짝인 카를 잃고 님에 흘러들어온 미누의 화신이며 님 최초의 거주족인 니닉인들의 시조이다. 잃어버린 반쪽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인지 탑의 높이는 산의 높이를 무색케 하며 끝은 말 그대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데, 정체모를 안개와 구름이 늘 탑의 상부 주위에 몰려 있어 아무도 그 끝을 본 적이 없다. 당시의 비상(飛上) 수단이었던 뮈의 한계점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탑은 벽돌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소수부락이 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었는지, 또 왜 이 탑이 우주의 격변에도 파괴되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우주 격변 직전, 텔레노아 라오가 별들의 문 오드나타를 지키는 문지기들의 생존자를 찾아 이 별에 데려왔을 때, 탑은 강한 번개를 맞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탑은 그로 인해 시동이라도 걸린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메아이네이 언덕에 시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빌타리트와 슈루팜, 킴메시와 달파인들의 조상들이 이 탑을 통해 님으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탑이 작동을 멈춘 지금, 우리 후세들은 이 신비한 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공간 이동이 어떤 느낌일지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다.
니닉인들은 니의 염원 외에도 세상의 비밀 하나를 이 신비한 탑 속에 숨겨놓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이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오랜 세월 구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덩굴 승강기 전설이다. 그러나 이 전설 역시 이야기의 원형을 추측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니닉인들은 기록을 그림으로밖에 하지 않았다. 문자가 있었다고는 하나 어쩐 일인지 그들은 문서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구전되던 이야기는 여러 가닥으로 변형되기 일쑤였고, 특히 킴메시와 달파 연계부족들은 과거 니니키안들의 원본 삽화에 자신들의 취향으로 살을 붙여 전설을 각색했기 때문에 그 근원을 찾아내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킴메시는 비옥한 평지에 살며 계절이 바뀌면 그림자가 지지 않는 곳으로 이주하는 철새족이다. 삼신(三神)을 숭배하는 그들의 덩굴 승강기 전설은 니닉의 신격화와 절기 변화에 따른 감수성이 특징이다. 실은 이때의 전설은 ‘뮈’를 식물의 씨앗으로 오인한데서 시작됐다. 뮈가 머리 부분에 쓰는 비상기계이며 그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는 사실은 달파 후기에야 밝혀졌고, 세상은 왜곡된 진실을 일부분 이어받고 말았다.
달파는 유랑민족이다. 전 지역에 걸쳐 널리 분포하며, 특히 사막과 고지대의 완전히 다른 조건에 각각 적응했다. 그들은 부락을 이루지만 특정 나이가 되면 뜻 맞는 젊은이들이 ‘카니발’을 이루고 유랑을 떠난다. 기존의 부락은 남겨진 이들에 의해 유지되다가 다른 유랑인들이 들러 정착하면 또다시 번화하기도 한다. 과거 뮤의 필그림으로부터 이어진 이 기묘한 유랑생활 때문인지 달파의 덩굴 승강기 전설의 핵심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모험에 치중한다.
이 책에는 킴메시 전설과 달파 전설을 중심으로 해설과 삽화를 실었다. 니니키안 그림기록의 해석은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니니키안 전설 (해석의 예)

님벨의 전기수트, 그리고 탑의 봉인.
모르쇠와 얼굴 없는 석상, 빼앗긴 소녀의 그림자
탑의 꼭대기를 향해 비상하는 그림자, 세상을 검은 구름으로 채우다.
수레를 타고 온 뮈
탑의 높은 곳에 잠들어 있는 공주를 깨우기 위해 비상하는 니니키안, 춤을 추다
전기로 인한 밝은 빛이 세상에 퍼지며 그림자가 추락하고 계곡에 흘러들어 호수를 이룬다.
오르골이 희생된 소녀와 닮은 얼굴을 석상에 새겨 넣고 그림자를 빼앗아 오자 모르쇠는 동굴로 돌아간다.

 

킴메시 전설

1장
네 명의 신들이 있었다. 일찍이 위로 세 명의 신들에게는 세 개의 보물 피리가 있었다. 무엇이든 한 없이 자라게 하는 피리, 불꽃을 영원히 타오르게 하는 피리, 원하는 대로 구름을 불어내는 피리가 그것이었다. 어느 날 첫 번째 신이 두 번째, 세 번째 신을 찾아가 말하길, 그의 쌍둥이 동생인 네 번째 신이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긴 그림자를 따라 어떤 탑에 들어간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은 두 신들에게 네 번째 신을 찾는 것을 도와 달라 부탁했다. 두 신들은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2장
세 명의 신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은 그림자의 탑에 도달했다. 탑의 작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 신들은 흙이 그대로 드러난 바닥에서 네 번째 신이 떨어뜨린 작은 주머니를 발견했다. 쌍둥이 신이 그것을 집어 들고 안을 살폈다. 주머니 속에는 작은 씨앗 네 개가 들어 있었다. 신들은 그것이 네 번째 신의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쌍둥이 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땅에 작은 구멍을 파 씨앗들을 심었다. 그리고 자신의 보물 피리를 불었다. 무엇이든 한 없이 자라게 하는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내 흙에서 작은 싹들이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자라기 시작했다. 네 개의 줄기들은 서로를 휘감으며 단숨에 위로 솟구쳐 올랐다. 신들은 그 줄기들을 잡고 탑의 위로 향했다.

3장
땅이 아득히 멀어질 즈음의 높이에 다다르자 신들의 주위에는 더 이상 빛이 머무르지 않았다. 마지막 빛줄기가 사그라지자 줄기들이 갑자기 성장을 멈췄다. 첫 번째 신이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소용없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두 번째 신이 작은 호롱불을 꺼내고는 자신의 보물 피리를 불어 보았다. 피리의 가락이 흐르자 호롱불의 빛이 더욱 밝게 타올랐다. 이를 바라보던 첫 번째 신이 다시 자신의 피리를 불었다. 그제야 줄기들은 다시 꿈틀거리는듯하더니 이내 처음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4장
얼마나 갔을까, 호롱불의 불꽃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피리의 음색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순조롭게 자라던 줄기가 또다시 우뚝 멈춰 섰다. 신들이 살펴보니 줄기들이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이미 신들은 공기 중의 수분이 머물 수 있는 높이를 훨씬 지나온 것이었다. 그때, 가만히 생각하던 세 번째 신이 자신의 보물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피리는 둔탁한 숨소리를 내는듯하더니 금세 둥그런 구름을 뽑아냈다. 그렇게 하나 둘 생겨난 구름들이 탑 속의 공간을 채워갔다. 이를 보던 첫 번째 신과 두 번째 신도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줄기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성장의 반동이 신들이 멈춘 위치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줄기는 또다시 텅 빈 탑 속을 빠르게 유영하기 시작했다.

5장
아무 것도 없는 캄캄한 탑 속을 세 보물 피리에 의지해 여행한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신들은 네 번째 신의 행방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자, 신들은 일렁이는 희미한 빛을 감지했다. 연주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의 벽에는 작은 상자들이 하나씩 들어 있는 감실들이 무수히 많이 나 있었고, 그 상자들이 마치 신호를 보내듯 약한 빛을 주기적으로 내고 있었다. 신들은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숨기고 있다는 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상자들 중 하나는 네 번째 신에 대한 비밀을 보관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신들은 상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상자의 바깥에는 담긴 비밀에 대한 내용인 듯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수많은 언어들로 쓰여 있었지만 신들은 그 비밀 언어들 중 어떤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쌍둥이 신과 다른 두 신은 네 번째 신이 있는 곳에 대한 비밀을 담은 상자를 찾기 위해 탑 속의 모든 상자들을 열어보기로 했다.

6장
상자들을 여는 데는 셋이 함께 해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들이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알아가던 중 세 번째 신이 연 상자에서 드디어 네 번째 신의 행방이 드러났다. 나머지 두 신들은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동시에 비밀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그것은 진실성을 잃고 더 이상 올바른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들은 세 번째 신에게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신은 동정심이 많았지만 하필 자신이 비밀이 든 상자를 열어 네 번째 신이 있는 어떤 곳까지 안내하는 힘든 일을 떠맡게 되었다는 것에는 괴로워했다. 그러자 쌍둥이 신은 세 번째 신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네 번째 신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그 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세 번째 신은 자신이 품은 의문에 대해 쌍둥이 신이 알게 된 것에 놀라고 부끄러워하며 노을처럼 얼굴을 붉혔다. 인정 많은 세 번째 신은 결국 다른 두 신과 함께 좀 더 멀리까지 여행하기로 했다. 세 명의 신들의 연주가 탑에 메아리치기 시작하자, 줄기는 또다시 한 없이 한 없이 위로 뻗어 올랐다.

 

달파 전설 (다큐멘터리 대본에 포함된 이야기)

전설 이전의 전설

둥가라 탑이라는 이름의 벽돌 탑이 있었습니다.(역주: 달파는 둔가라 탑을 둥가라로 표기한다.) 둥가라는 번개라는 뜻이에요. 이 탑은 하늘에 닿아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기둥 같았죠. 둥가라 탑에는 몸에 전기적 성질을 띤 공주가 살았다고 전해져요. 신화적 존재가 된 여섯 쌍둥이 중 하나인 님벨이 바로 이 공주예요. 님벨 공주는 매우 특수한 전기수트를 입고 머리 위에 뮈를 단 모습으로 묘사되죠.
탑이 있는 곳은 메아이네이 평원이에요. 메아이네이는 소녀들이란 뜻이에요. 이 지역은 무수히 많은 얕은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언덕마다 니닉인들의 부족이나 가족들이 집을 짓고 살아요. 신기한 피리를 불어 구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니닉인들 일상의 대부분입니다.
둥가라 탑과 가까운 언덕들에는 마이마 가얀디라는 석상들이 즐비해요. 각기 다른 괴이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는 석상들의 수는 천여 개에 달하죠. 이 석상들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시공의 문이에요. 둥가라 탑 내부는 층이 없이 텅텅 비어 있지만 한참을 위로 올라가면 작은 방들이 무수하고 그곳에는 세상을 넘나드는 모든 비밀을 숨겨놓은 상자들이 있다고 해요. 이 상자들이 석상과 하나씩 짝을 이루고 불가사의한 탑 내부의 에너지로 차원의 문에 시동이 걸리는 거죠.
마이마 가얀디를 사용하기 전에는 오드나타 의식을 행합니다. 오드나타는 본디 백년에 걸쳐 자라고 천년을 살다 지는 식물의 이름이에요. 꽃이 피는 모습이 시공의 문과 닮았다고 해요. 오드나타의 씨앗에 조각을 새겨 가공을 하면 이 식물의 긴 수명을 단 몇 시간에서 하루 사이에 빠르게 감을 수가 있답니다. 이렇게 해야 마이마 가얀디 주위의 시공간이 유연하게 돼서 다른 세상과 메아이네이 언덕이 연결될 때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되는 거랍니다. 니닉인들에게 이 일은 큰 의식이며 행사예요. 몇몇씩 짝을 지어 석상 앞에 씨앗을 심고 주위를 돌며 강강술래를 합니다. 짧은 생을 살다 져야 하는 오드나타를 위로하고 탑에 있는 신성한 에너지와 그 근원이 되는 공주를 섬기는 거예요.
마지막 오드나타가 시들고 나면 (어떻게 아는지) 님벨 공주가 탑에 시동을 겁니다. 우웅 하는 진동소리와 말 할 수 없는 기묘한 빛이 탑의 아주 작은 창에서 새어나오는데, 환한 낮에도 그 빛은 선명히 보입니다. 마이마 가얀디를 통해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찾아드는 이들은 대부분 그 세상의 이름 있는 장인들입니다. 그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신기한 물건들을 수레에 한가득 싣고 메아이네이 언덕으로 넘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들이 도착하면 니닉인들이 매일같이 기다리는, 절기에 단 한번뿐인 성대한 축제, 장인들의 축제가 열리게 됩니다. 니닉인들에게 이 축제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일입니다. 독무와 군무, 음악, 각종 의식과 볼거리들, 어떻게 입고 벗는지 모를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걸친 사람들의 퍼레이드, 축제에 있는 물건 하나부터 열까지를 만들어내는 세심한 장인들! 처음으로 도착한 장인이 오솔길에 내려 수레를 끌기 시작하면 언덕들의 평원은 온통 환호와 나팔 소리로 가득 찬답니다.
오드나타의 씨앗에 조각을 해 줄 장인도 수레에 별별 씨앗을 가득 싣고 옵니다. 꼭 자라서 식물이 된다는 법은 없는 씨앗들이지만요. 나중에 이 씨앗 장인은 오드나타에 다른 가공을 해서 일정 조건만 만족한다면 위로만 자라도록 만들어주기도 했답니다.
해마를 닮은 장인은 심해의 기름 층에 오랜 시간을 재워 만든 산호 장작을 가져 오지요. 한 번 불을 붙이면 수십 년을 타는 훌륭한 장작이죠. 이 장작의 불빛은 희미하게 핑크빛을 띱니다.
또 어떤 장인은 봉인을 하는 진공 도구들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데, 이 기술을 써서 만든 거라곤 버섯의 포자를 개조해 사람의 몸에 한 번 붙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진공 벨크로뿐이었죠. 그런데 이 벨크로가 붙은 생물이나 무생물은 벨크로의 진공 인력에 의해 그 무게가 먼지처럼 한없이 영(0)에 가까워집니다. 오직 바람이 불지 않는 메아이네이 언덕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신기한 발명품이라고나 할까요. 순수 식물성이라 왠지 먹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니닉인들은 모험가들이 아니었습니다. 순수하게 물건들을 구경하고 교환하며 즐거워했어요. 그런데 순수 니니키안 시대 이후 외부 세계와 대대적으로 교류가 시작되면서 필그림들이 들어오고 모험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 호기심 많은 모험가들은 앞서 말한 세 장인의 보물을 조합하면 탑의 윗부분으로 올라가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 믿기 시작했습니다.

소녀

새로운 세계로부터 온 모험가들은 둥가라 탑 주위에 캠프를 치고 머물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탐사를 준비했어요. 개중 몇몇은 가족이나 부락 단위로 행동했죠. 탐험대장 크로바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왔습니다. 특히 그의 어린 막내딸은 곧바로 신세계의 풍경에 매혹되었고, 매일매일 들판에 나가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마이마 가얀디를 하나 둘 구경하던 소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얼굴 없는 석상 하나를 발견했어요. 얼굴 부분이 마모되어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 없는 이 석상은 양 어깨에 작은 날개 같은 것을 달고 있었죠. 석상을 바라보던 소녀는 순간 석상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자세히 보니 이상한 검은 형체가 그림자를 제 어깨에 짊어지고 질질 끌고 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철부지 소녀는 호기심에 그것을 따라나섰고, 얼마 후 아주 조그만 초록빛 샘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크로바는 숙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문을 열어보니 니말다라(메아이네이 평원에 님벨이 세운 나라의 수도) 언덕부족들의 장로 세 명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한 명이 서 있었죠. 장로 하나가 앞으로 나서 말없이 목례하고는 크로바에게 무언가를 건넸습니다. 초록색 보석가루를 입혀 영롱히 반짝이는 손가락 크기의 정교한 인형이었어요. 장로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숲의 전령, 오르골이 지난밤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르초크 숲 입구의 초록색 샘가에 저 인형이 있었답니다. 모르쇠라는 그림자 형상이 얼굴 없는 석상으로 인해 실체를 얻었고 어떤 소녀의 혼을 빌어 생명을 얻은 것 같다고 알려주더군요. 모르쇠는 곧 둥가라 탑을 기어올라 높은 곳에 보관된 고대의 함들을 제멋대로 열어 세상의 비밀과 주문을 새나가게 할 것이니, 빨리 그 실체와 혼을 되돌려놓지 않으면 세상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현명하고, 날렵하고, 언변에 뛰어난 세 모험가들을 모으고 그들이 모르쇠보다 먼저 탑 위로 올라가 탑의 주인에게 이 일을 알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에 크로바가 말했습니다. “탑을 탐험하는 일은 바라던 일이기는 합니다만, 탑의 주인이 정말로 있을지, 그런 일들이 진짜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게다가 저희는 아직 탑에 오를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달파인의 모험심과 니말다라의 보물이 만나면 방법이 생기겠지요. 그리고 일은 벌어지고 나면 수습할 수 없게 되지요.” “이런 것을 제게 말씀해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르쇠가 혼을 빌린 소녀가 당신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아아,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모르쇠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 딸은 어제 저녁에 저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모르쇠가 이 인형을 제대로 사용한 것이라면 소녀는 이제 잠을 깨지 않을 겁니다. 모르쇠에게서 혼을 되찾기 전까지.”

세 명의 모험가와 세 개의 보물

딸이 깨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탐험대장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크로바는 모르쇠를 찾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장로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어요. 곧, 메아이네이 평원은 모험의 준비로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정들은 크로바가 일러준 대로 탑 속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원통형 승강기를 제작했어요. 어린 아이들은 발탁된 세 명의 젊은 모험가들을 구경하려고 캠프 주변에 모여들었지요. 모험가들의 부모는 착잡함에 젖어 음식과 옷가지 등 꼭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습니다. 사흘째가 되어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세 장로들은 탐험부락을 찾아와 세 젊은 모험가들을 불러 모았어요.
실그리라, 베티오란, 래, 이렇게 세 젊은이들이 장로들이 있는 캠프에 찾아왔어요. 니말다라의 장로들은 그들을 보더니 주머니를 하나씩 전해 주었어요. 주머니 안에는 각 장로들의 부족에서 수호하던 고대 유물들이 들어 있었는데, 각각 톨라, 파그라, 흘리바라라고 했습니다. 장로들은 그 보물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아직 단달의 빛이 남아있는 황혼 무렵, 각자의 언덕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슈자라의 붉푸른 빛이 은은하게 퍼지던 그날 밤, 모험가들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둥가라 탑 주변은 달파의 모험가들과 니말다라의 니닉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지요. 이윽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실그리라는 침착하게 장로에게서 받은 톨라를 주머니에서 꺼내 탑의 바닥에 심었습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새에 싹이 나오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채 놀라기도 전에 싹은 이미 어른의 키 정도로 자라났고, 굵직해진 줄기들은 금세 허공에 띄워둔 승강기에 닿을 정도가 되었지요. 세 모험가들은 얼른 승강기에 올라타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정오가 가까워지자 줄기들은 더욱 빠르게 자라더니 한층 굵어져 힘을 받기 시작한 줄기들은 드디어 세 모험가들이 탄 승강기를 단단히 휘감고 순식간에 밀어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환송했습니다.

래의 회상

“입구에서 멀어짐에 따라 빛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베티오란은 파그라에 불을 붙였다. 식물은 그 강하고 따뜻한 불빛에 이끌려 계속해서 위로 줄기를 뻗어가며 우리가 탄 승강기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균형도 잡기 힘들었지만 얼마 지나자 이 거대한 식물의 운동 주기를 익혔고 멀미도 덜해졌다. 탑 안은 무척 포근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습기는 피부가 촉촉함을 느낄 정도로 짙었다. 그러나 우리는 등불이 미치는 범위 이상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희미한 안개로 한 치 앞을 겨우겨우 알아보았다. 마치 우리가 어떤 거대한 생물체의 뱃속에 삼켜진 것처럼 꿈틀대는 생명이 느껴지는 어둠. 그러나 실제 그런 상황과 함께 밀려와야할 법한 절망은 왠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어둠은 빛을 기다리고 있는 어둠, 빛을 향해 가는 어둠 같았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가까이의 벽에서 튀어나온 선반과 그 위에 놓인 수많은 함(상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함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개도 같은 모습인 게 없는 그것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나하나가 우리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것들을 담고 있을 것만 같은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파그라를 잠시 끄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반대편의 벽을 보고 있던 베티오란이 외쳤다. “저기 저 함 좀 봐, 열려 있어!” 모두가 한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승강기가 기울었고, 우리는 잠시나마 엄청난 공포를 맛보았다! 곧 평형을 유지한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벽을 바라보았다. 함 하나가 정말로 열려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놀란 것은 열린 함보다도 그 옆에 있는 생명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토끼 같은 귀에 작은 손가락이 달린 귀여운 앞발이 설치류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무릎을 꿇은 관절의 모양은 통통한 어린아이 같았다. 털은 없고 배의 살은 여러 겹으로 접혀 있었다. 그 동물은 배와 목을 무한히 늘릴 수 있는 것 같았다. 탑의 이편에서 저편, 상자방의 모든 부분에 목이 닿아 상자들을 관리하는듯했다. 우리는 그에게 열려진 상자를 찾아 인형을 돌려놓기 위해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왔으니 인도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주인? 뭐!아몰라! 말을 안 들어서 내가 땅에 묻어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

(실그리가와 베티오란은 무사히 땅에 도착, 집으로 돌아간다. 래는 탑의 어딘가에 남아서 오드나타를 계승했다고 전해진다.)

다큐멘터리 DOCUMENTARY

다큐 니닉 –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 Docu – Ninnik Fabrication (상영 시간 약40분)
본 다큐멘터리의 제작목적은 ‘니닉’의 세계관과 작업현장의 실제 기록을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더욱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함에 있다.
대학 이전의 만화·일러스트 컷에서부터 대학과 대학원 시절의 니닉 작품들, 과거 전시작품들과 최근의 전시 준비까지, 영상을 통해 작가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작업 과정과 작업실 분위기, 친구들과 모여 니닉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 등이 함께 담겼다.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촬영·편집하는 것도 작업의 일환이자 미디어 협력 프로젝트 Media Collaboration의 연장이 되었다. 촬영감독은 벽돌쌓기와 코일링 흙 작업의 전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인터벌 촬영을 제안했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음악은 작가가 지은 ‘니닉스러운’ 멜로디를 음악전공자와 함께 발전시킨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대본 SCRIPT

1막

전 이야기보따리를 짊어진 이야기꾼의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온갖 동화와 신기한 이야기들을 좋아했죠.
저는 완벽주의가 있었어요. 호기심을 끄는 것만 배우고, 관심 있는 건 잘 하고 싶어 했죠. 글, 음악, 미술은 모두 좋아하는 분야였어요. 불현 듯, 애니메이션이라는 총체예술을 인생의 목표로 삼겠다는 꿈이 생겼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선택했고, 언젠가 누구도 보지 못한 나만의 특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죽겠다!” 이 말을 언제나 당당히 말하고 다녔어요. 그것이 꽤나 긴 여정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도 보지 못한 특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말은 그 특별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그건 다시 평생의 예술혼을 바칠 완벽한 하나의 주제를 찾는 심오한 과제로 탈바꿈했어요. 인간의 신체나 감정, 자연과 같은 전형적인 주제들은 성에 차지 않았거든요.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겹치지 않는 것, 오래오래 전해질 가능성을 품은 이야길 꺼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난 오타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면, 믿으시겠어요?
그 오타가 바로 니닉이었어요. 그 두 글자가 주는 어감은 그냥 이 세상의 것과 달라 보였어요. 경계를 알 수 없는 그라데이션 팔레트에서 색 하나를 정확히 집어 이름을 붙이는 느낌이었어요. 직감 혹은 영감이라 부르는 뇌의 활동은 이 불가사의한 선택을 진짜로 해냈어요. 게다가 제 완벽주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히 납득시켰죠. 그 후로 니닉은 우연히 나타난 단어에서 시작해, 개념, 세계관, 이야기가 되었고, 제 모든 예술 작업의 주제가 된 거예요.
호주에서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니닉은 어느 때보다 많이 변화했고 발전했어요. 교수셨던 Dr. Dean Bruton은 니닉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믿고 일깨워 주셨죠.
당시 저는 니닉의 작업 방향에 고민이 많았어요. 세계관이 확장될수록 그 기반도 더 견고해져야만 했거든요. 저는 컨셉추얼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춰 니닉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근본은 컨텐츠,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니닉은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라는 새롭게 개척할 예술 장르로 거듭났고, 이것은 2007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죠.
전시를 통해 컨셉추얼 컨텐츠를 발표하는 방식은 흔하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우려와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다행히도 비슷한 시기에 접한 톨킨의 책과 픽사의 전시가 그런 생각을 버리게 해줬어요. 톨킨의 세계관을 담은 실마릴리온은 창조자들의 유사한 습성이 배어있었죠. 창조의 근원의 경계를 탐험하는 듯한 모호함과 자신만의 언어.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어요. 상업 애니메이션의 프리 프로덕션 아트를 순수 미술의 장르로 당당히 내세운 픽사의 20주년 기념전은 실제로 제가 니닉으로 말하고자 하는바와 다를 게 없었어요. 큰 격려와 확신을 얻었죠.
설문조사, 도예, 페인팅, 드로잉, 컴퓨터 그래픽, 3D 애니메이션, 동영상 편집, 그리고 글쓰기까지, 언어유희로 시작된 한 개의 단어를 확장시키는 데는 방법과 기법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어요. 낙서일지라도 니닉과 어울린다고 판단되면 버리지 않았어요. 특이한 발음을 기록해서 이름으로 만드는 등, 우연을 필연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니닉스럽다’ 라는 말도 창출됐지요.

2막

작업이 계속됨에 따라 니닉이 지평으로 삼는 장르인 개념 공상미술,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와 기존의 컨셉추얼 아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됐어요. 기본적으로 과거 컨셉추얼 아트의 정의를 전제로 하지만,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창조성의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영화나 게임의 컨셉 아트나 컨셉 디자인 등도 실무의 연장선으로 굳어진 컨셉추얼 아트예요. 상업적 컨셉추얼 아티스트들도 스토리텔링 능력과 매체에의 이해도, 창의성을 평가받고 있죠.
개념 공상미술을 하면서 세계관을 지니게 되면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 서사성이 발현돼요. 좋은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모든 매체를 자극하고 재료나 방식의 혼합 내지 화합을 시도케 하는 동기가 되죠. 고전 매체와 디지털 매체, 즉 미술과 기술을 접목시키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예요. 미디어 컨텐츠의 발전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협업, Collaboration으로 확장됐고 이들 상당수는 도전정신을 요구하고 있죠.
컨셉추얼 니닉 작업에서도 협업의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부각되고 있어요. 웹사이트를 만들 때, 영상을 제작할 때, 전시 설치를 할 때, 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머, 음악가, 전기와 구조물에 밝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겠죠.
예술가만큼 자신과 뜻이 맞는 훌륭한 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아직은 생소한 개념 공상 미술 (컨셉추얼 이매지너리 아트) 을 하루빨리 정의 짓고,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3막
상상의 이야기, 니닉이 시작될 무렵, 가상의 이론을 먼저 하나 만들었어요. 뇌의 한 특수한 요인이 모든 창조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내용이에요. 이 요소는 비판인자라고 이름 붙였어요. 비판인자는 필연적, 우연적 공상들을 사슬처럼 엮어가는 브레인스토밍 활동이에요. 특징이라면 창조 에너지의 성질을 이분화 한다는 건데요. 창조 에너지의 이분화가 거듭되면 프랙탈처럼 퍼져나가 보송보송 브로콜리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요. 이 현상이 팽창과 동시에 진행 축에 따라 수직적으로 성장하며 역사성을 가지기 때문에 브로콜리 트리라고 불렀죠.
브로콜리 트리가 니닉과 결합하면서 수직적이고 병렬적인 세계관으로 이어졌고, 이에 영감을 얻어 탑이라는 형상이 나타났어요. 이때부터 탑은 니닉의 세계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많은 것들을 상징하고 작품에도 영감을 준 중요한 요소가 됐죠. 그리고 이 탑에서 가장 오래된 첫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니닉인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달파 전설)

니닉의 즐거운 에피소드들은 나무로 치면 기둥에 해당되죠. 그 뿌리는 평소 제가 바라는 신성과 희망으로 빛나는 모습이 아니라, 의외로 암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성향을 가져요. 그리고 이런 부분은 니닉의 시스템에 가깝고 가장 추상적인 부분, 즉 무의식과 맞닿아 있죠. 전 이에 해당하는 작업을 빌 니닉이라는 서브 주제로 따로 부르고, 깊게 뿌리 뻗어나가게 하기로 했어요. 이 검은 뿌리 덕분에 푸른 가지들이 펼쳐질 수 있는 거니까요.
이야기는 자라고 자라났어요. 네 개의 별이 있는 우주가 생성되고, 니닉 세계의 시초가 되는 고대 종족, 미누와 빌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카와 니와 도구모라는 형상들의 여섯 분신, 즉 여섯 쌍둥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니닉의 연대기가 정해졌구요. 여기서 카와 니는 서로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 형상들이었어요. 결국 그 둘의 만남이 우주의 의지로 받들어진다는 것이 이야기의 가장 큰 주제나 다름없어요.
니닉의 팽창은 천 개의 이름을 짓는 작업으로 절정에 달했죠. 니닉스러운 어휘들을 모두 모아서, 니닉 세계의 도시와 장인들의 이름을 천 개 넘게 만들었어요. 이 이름들은 오리지널, 기존언어, 합성어의 세 종류로 나뉘어요. 오드나타라는 시공의 문을 닮은 꽃의 이름, 카, 니, 도구모, 그리고 빌 니닉에서 빌(검다, 어둡다)은 모두 오리지널 니닉어죠.

마지막
니닉의 미래는 현재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요. 방대해진 내용으로 형체를 얼추 완성시킨듯하지만, 그 영혼은 아직도 이 작업공간에서 형성되고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지난 십 년이라는 시간도 한 세계를 만드는데 들 법한 시간인 것 같아요.
이 세계의 연대기도 계속계속 자라기 위해서는 대나무처럼 마디처럼, 전환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학업과 작업을 통해 마디들이 생기고는 있지만 몇 번의 전시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어요. 지난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니닉을 생각하기 위해서요.
이야기꾼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이토록 조물주의 기분에 취할 수 있는 일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요?
흙이 가진 영성, 고대로부터 이어진 미술의 양식이 누리는 무한한 서사성. 아마 흙을 선택했기 때문에 ‘니닉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했지 않았을까요?
흙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데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찌 됐거나 전 목적지가 분명했거든요. 언젠가, 제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절 완성된 니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크레디트 CREDIT

기획, 제작 김아영
대본, 해설 김아영
연출, 촬영 박상호 윤황
편집 김아영
음악 양동진
특별출연 김영 김유석 김효상 박지욱 서광민 심가인

Produced by Kim Ah Young
Script and Narrated by Kim Ah Young
Directed and Cinematography by Park Sang Ho, Yoon Hwang
Edited by Kim Ah Young
Music by Yang Dong Jin
Special Thanks to Kim Young, Kim You Suk, Kim Hyo Sang, Park Ji Wook, Seo Kwang Min, Shim Ka In (alphabetical order)

1) 이야기가 자라는 나무 (나무의 관점에서)

니닉의 세계는 신화와 같다. 허구인지 사실인지 인간이 구분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화는 지역과 시기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상징적인 생명체를 등장시킨다. 생명과 근원의 의미를 가진 나무도 그 중요한 하나이다.
나무의 겉모습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연상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주제는 자라나면서 수많은 하위 주제들로 가지를 치게 되는데, 그 전체적인 형태가 실제나무의 기둥과 가지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관의 표현에 있어 나무의 형태가 좋은 비유대상임을 발견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구상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아이디어 정리 및 캐릭터와 이야기들 사이의 상관관계의 연구 중, 하나의 키워드로 시작된 발상의 과정은 그 키워드에서 생겨난 각각의 캐릭터 및 에피소드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며 그 자취가 마치 덩굴나무의 형태처럼 귀결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의 기둥으로부터 출발하는 일관성, 가지에서 가지로 점차 미세하게 펼쳐지는 산만성, 그리고 결국 그 위에 풍성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 이것은 굉장히 길고 마른 기둥을 가진 새로운 모습의 브로콜리를 연상시켰다. 그리하여 이런 종류의 예술적 발상과정(브레인스토밍)을 이론화하기에 앞서 이 결과에 니닉 트리(혹은 브로콜리 트리)라는 잠정적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니닉 트리에서는 뿌리의 의미가 크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주제에 준하는 기둥 자체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그 주제 이전의 광대한 무의식에 대한 고찰은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가진 별차원의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이야기는 나무에서 자란다 (탑의 관점에서)

니닉의 구현에 있어 벽돌의 탑은 살아 숨 쉬는 세상으로서의 니닉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한 상징적이고도 구체적인 표현기법이 된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외부의 벽돌 탑 내부에 또 하나의 가늘고 긴 기둥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발상의 근원에 해당되고, 겉의 벽돌 건축물은 그 발상으로부터 구현된 이야기가 마치 외피처럼 드러난 것이 된다. 즉, 나무의 둘레를 감싸는 축조형상이 지닌 의미는 나무가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터전에 영역을 두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외벽을 만들어낸 행위의 형상화이다.
동화 ‘돼지 삼형제’를 기억할 것이다. 무서운 늑대를 피하고자 세 마리의 돼지는 각각 첫째는 짚으로, 둘째는 나무로, 셋째는 벽돌로 집을 짓는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의 집은 늑대의 입김에 힘없이 부서져 버리고, 셋째의 벽돌집만이 온전히 남아 돼지들은 그 안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땅속으로 사라져버린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에도 모두 벽돌로 된 축조물이 있었다. 이런 유적들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자 수호벽이었고, 때로는 피라미드와 바벨탑처럼 인간의 야심에 의해 세워진 상징물이도 했다. 이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벽돌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두 공든 탑들이었다는 것이다. 짚과 나무를 사용해서 집을 만드는 것은 땀을 뻘뻘 흘리며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야 했던 막내 돼지의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월했지만 영속할 수 없었다. 기원전의 건물들이 모두 나무로만 지어져 있었다면, 우리는 고대 문명의 터전을 가늠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토록 벽돌 탑이라는 양식은 상징적이며 견고하다. 니닉이라는 고유한 키워드(내부 기둥)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벽(외부의 탑)은, 그 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완고한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니닉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세상에서도 벽돌의 탑들이 세워지고 있다.

 

3) 혼돈의 탑 (현실의 관점에서)

탑을 쌓는 일은 참 고되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묵묵히 한 가지 일만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탑을 쌓는 일은 참 즉흥적이기도 하다. 많은 변칙과 시행착오는 계획만으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탑을 쌓을 때는 매우 희미하고 몽롱한 정신상태일 경우가 많다. 작업의 긴 시간 동안 머릿속을 유영하는 온갖 생각들의 꼭대기에 탑의 완성이라는 진지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그리고 그로부터 야기되는 정신적인 혼란. 그렇다. 희로애락으로 충만한 일상다반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벽돌의 탑이 사람들에게 전하고저 하는 메시지는 바로 혼란이다.
(실제이든 작업이든) 탑을 쌓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평평한 면에 기초를 바르게 하는 수평지향적 지식들이 필요하다. 벽돌이 쌓여 탑이 어느 정도 높아지면 이제는 높은 탑 위로 오르내리고 재료를 위로 실어 나르며 탑의 기울기를 곧바르게 유지하는 등의 수직지향적 지식들도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 더 높이 올라가다 보면 건설자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끝이-혹은 시작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며 언제까지 탑을 올려야 하는지, 본래의 축조 의도와 동기는 망각한 채 습관처럼 벽돌을 얹어나갈 지도 모른다. 초기의 기대와 낙관에서 비롯된 열정, 그에 이어 찾아오는 권태와 허무감을 겪은 건설자들이 스스로 결말이 다가온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탑의 공사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최후에 남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해진 인부들의 볼품없는 벽돌장식과 술에 찌든 인부들의 실수로 생긴 흠집들뿐. 실로 정신적인 차원에서 탑을 유지해줄 신지식,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신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내가 흙으로 하나하나 작은 벽돌을 만들어 쌓아 올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계속 탑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너만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먼 옛날 신이 바벨탑을 세우려던 자들을 벌하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도록 말을 혼란스럽게 뒤섞어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의 능력이 아니었을지라도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공을 들여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이 점차 땅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종국에는 공사현장의 해체를 초래하게 될 이와 같은 의식의 분리는 그간 이룩된 탑의 수많은 층들을 미완성의 축조물로 남겨놓고 말 것이다. 자연의 물리적인 힘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벽돌의 탑은 그렇게 번뇌의 탑으로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4) 신념 (꿈의 관점에서)

처음에,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는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불완전한 컨셉츄얼 아트의 단계는 최대한 단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완성은 언젠가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내게는 없었고, 자꾸 불어나기만 할 뿐 정리되지 않는 무수한 미세 아이디어들에 치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우연(Contingency)을 통한 창조라는 씨앗이 무수히 파종되던 중 문득, 아, 이렇게 계속해서 나무의 잔가지를 치다 보면 멀리서 누군가는 훌륭히 다듬어진 나무를 볼 수 있겠구나, 계속 씨앗을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저 멀리서 웅장한 숲이 생겨난 것을 누군가가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미완성에의 회의가 사라졌다. 세계적인 필름 스튜디오 ‘픽사’는 총 제작기간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2년 이상을 기획, 개발기간으로 투자한다. 중국 대나무는 4년을 땅 속에서 기다리다가 나머지 1년 안에 키가 쑥쑥 자란다.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자면 얼핏 완벽으로의 길은 멀어져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그 모든 길이 향할 한 곳의 이정표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카펫을 짜는 한 장인의 이야기가 있다. 함께 일하는 아이들과 실을 주고받으며 만드는데, 때로는 아이가 잘못된 색실을 보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럼 장인은 그것이 처음에 정해진 패턴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할까? 아니다. 실수로 들려온 다른 색의 실을 이용해서 바로 그 위치부터는 그때까지의 패턴과 조화를 이루는 또 다른 패턴을 짜기 시작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라는 속뜻을 가진 미사 중의 이 짤막한 강론은 나만의 장인정신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한 가지 주제와 목표를 선택하고 오래도록 그에 매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주제에 있어서 장인정신을 발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사실 컨셉츄얼 아트의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과 무의식의 출현을 캐치하려면 작은 실수나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낙서 중에 출현한 괴이한 형태도 기존의 주제와 연관시켜 얼마든지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려내고 만든 것들이 때로는 내 색과 어긋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진행시키기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것을 꾸역꾸역 고치고 그러다가 완성도 안 된 작업물을 결국 지우지 못하고 또 고스란히 보관하게 되는 것은 비록 실수로 인한 그것이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합당화의 한 방식이다.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것이 어쩌면 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퍼즐조각이 될지 모른다며 긍정해주는 것. 컨셉츄얼 아티스트는 특히 자신과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합당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의미를 결부시키는 것이며, 또 의미를 찾아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을 그린 후 상대방이 그것을 삼각형이라고 믿도록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단순한 정의가 우리들 세상의 규칙이 아닌 다른 세상의 규칙에 의거한다고 말하는 것뿐일 테니까.)
원하는 것을 확고히 고집하고 그 느낌을 얻을 때까지 그리고 지우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회화적 거장이 될 가능성을 조금 더 높여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나의 세계를 위한 합당화를 시작했다. 나는 니닉 세계가 좋고, 그 세계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이야기들을 이어가기 위해 열정과 인내와 의지로 목표를 확고히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니닉 세계의 가능성이 긍정의 기운(Positive Energy)으로 가득한 이상, 니닉은 번뇌가 아닌 ‘신념’을 상징하는 높고 훌륭한 탑의 완성을 내게 약속할 것이다.

 

김 아 영

KEYWORDS

컨셉추얼 아트 Conceptual Art : 결과물보다 개념과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예술의 한 갈래.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 완성된 작품의 근원이 되는 실마리(키워드)를 찾는 모든 행위이다. 이 전시회는 특히 애니메이션 기획과정의 컨셉추얼 아트를 재조명하고, 흙과 컴퓨터라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진보한 매체를 아울러 작업한 내용을 한데 모은 실험적인 프리젠테이션의 한 양식이다.

니닉의 세계 World of Ninnik : 실재하지 않기에 상상력으로 창작해낸다.
‘니닉’은 컨셉추얼 아트의 주제이며 작품 세계의 키워드다. 현실과 다른 세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 소품, 배경 등 그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 니닉이며, 작품의 소재다.

발상 Inspiration : 허구는 0차원의 행위다. 영감이고 감각, 무의식이며 필연성이 결여된 연상 작용이다.
뿌리에서 줄기, 가지로 뻗어나가며 점차 그 모습을 풍성히 하는 나무는 그 형태가 수직적 구조와 수평적 구조가 조화를 이룬다. 허구가 전개되고 진화되는 과정도 이와 같다. 완성된 이야기가 세상에 펼쳐지기 위해서는, 나무의 기둥이 뿌리로부터 가지로 양분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듯, 거대한 영감의 바다가 가진 압축된 에너지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는 주제가 필요하다.

 

INTRODUCTION

니닉 세계의 창조를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에서 소개될 작품들은 그간의 컨셉추얼 니닉에 대한 이론적, 실질적 탐구과정의 최초의 결실이다.
판타지의 주제를 추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 수직의 입체 도예조형물 작업에서는 흙의 미묘한 성질에의 이해와 타협이 무사완성의 열쇠가 된다. 도예작품과 그 의미를 공유하는 디지털 드로잉은 미지의 세계의 주인공 캐릭터들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컴퓨터라는 매체를 컨셉추얼 아트라는 전환적 장르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현대미술에서 그 예술성을 새롭게 평가받을 계기를 확대한다. 동일한 컨셉트로 디자인된 웹사이트 또한 앞으로 니닉 세계와 관객간의 훌륭한 매개체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와의 직접적 소통은 작가가 어떤 생각과 자세로 작업에 임하는가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난해할 수 있는 전시 컨셉트에 관객이 조금 더 쉽게 다가가도록 할 것이다.

 

“여행객 여러분, 전 여러분의 엘리베이터 가이드, 호기심 많은 잭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니닉 세계로 안내해드릴 겁니다.”

[고목, 엘리베이터] 니닉의 세계가 발생하는 과정을 나무의 한 살이로 풀이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
‘이야기는 나무에서 자란다’라는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듯, 이번 전시의 초점은 ‘이야기’와 ‘나무’이다.
이야기는 주제가 되며 나무는 형태가 되므로 둘은 육체와 정신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나무에서 자라는 이야기가 강조하는 것은 창조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뻗어가는 나무의 생장은 작가의 깊은 무의식으로부터 홀연히 출현하는 이야기의 창조에 비유된다. 나무 밑둥을 연상시키는 원통형으로부터 정사각형에 가까운 벽돌 탑이 타고 오르는 형태는 아이디어가 뻗어가면서 가지를 치듯 다양한 이야기를 구축한다는 개념이다. 작품들은 모두 간단한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출발하여 즉흥적인 세부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는 탑의 창, 움푹 들어간 방, 작은 집과 같은 부분은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영화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에피소드들의 모음을 뜻하는 동시에 예술이 지향해야 할 목표점이 된다. 이야기가 상상되지 않는 음악은 생명이 없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작품은 건조하다. 그것이 한 구절의 시처럼 단편적인 사연을 가지는가, 장편소설의 갈등구조를 연상시키는가는 관계없다. 생생한 이야기가 전제되지 않은 예술 작품은 일회용 종이컵과 같을 뿐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데 녹여서 새 주물로 뜬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인큐베이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의나 타의에 의해, 의식적 혹은 우연적으로 인생의 ‘컨셉트’를 설계하고 타인과 그것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예술이라는 하위분류 속에서도 역시 강한 주제의식과 꿋꿋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음악과 글과 그림 속에 그것을 표현하고자 온 힘을 쏟는다.
이 전시를 보고난 뒤, 힘든 세상 속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컨셉트-꿈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의식에 잠재된 염원, 애정, 열정, 인내, 의지, 신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기도의 기운을 가진 이 여섯 혼은 마치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우리들을 지원해줄 큰 힘이 될 것이다.

[창조의 나무 (여섯 쌍둥이의 육아일기)]

창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Creation, 그것은 곧 벽돌을 한 개 한 개 쌓아올려 만든 공든 탑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이다.
탑은 무의식 그 깊은 곳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자라난 나무, 의식적 허구를 나타내는 그 나무로부터 생겨난 이야기들이다. 태곳적, 최초의 사람들이 문명을 건설하고 아브라함이 그러했듯 그 후손들을 불려나가기 시작했을 때 즈음 마냥, 니닉의 가상 세계에도 역사의 뿌리는 서서히 내려지고 있다.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문명-이야기-들은 생겨났다.
가장 먼저, 꿈을 꾸지 못하는 인형들의 자작나무 숲과, 회색의 잔영을 만들어내는  큰 탑이 있는 섬이 생겨났다. 고집쟁이 공주가 성에 틀어박혀 통치하는 나라와, 한 가닥의 실에 삶을 비유하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사는 보실국도 생겨났다. 만물을 자유자재로 조합하는 연금술사들의 마을이 생겨났고,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생물을 키워내는 신비한 모르쇠의 동굴도 생겨났다.
또한 각각의 세상에는 그 곳을 자유로이 누볐던 사람-캐릭터-들이 있었다. 꿈을 자유로이 뺏거나 주기도 하는 오르골, 세상의 법칙을 알아내는 데 골몰하는 소녀 과학자 뮤, 고집쟁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 공주 니닉 님벨, 최고급 실크를 만들어내는 보실국의 최고 장인 이라, 공중부양의 효과를 가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버섯을 채집하는 레피시 알케미스트 슈레스, 그리고 그림자로부터 태어나 그 어둠으로 형체를 빚어내 혼돈과 갈등을 일으키려는 모르쇠가 있다.
이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이 생겨나기 이전의 니닉의 시조들, 신화적 인물들이다.
새로이 생겨난 세계에서는 이 여섯에게 서로 다른 색과 의미를 부여하며 신격화시켰다.
‘나무의 수없이 많은 가지들처럼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원리와 의미를 있게 한 이 여섯 쌍둥이들은 이제 니닉의 세계에서 한 지역의 조상이자 수호자이며, 창조자들인 것이다.’

– 달빛으로 광합성을 시작한 지 수주 수개월, 여섯 쌍둥이가 긴 산고 끝에 세상에 나온 어느 날

 

김 아 영

‘니닉’은 아직 정해진 의미가 없다. 니닉은 몇 년 전 ‘우연히’ 생겨난 언어이며 그 근거 또한 확실치 않다. 다만 그것이 출현한 시기가 의미에 입각한 예술에 심취하여 평생 창작활동의 모토를 찾아내는데 골몰해 있던 때임을 감안하여, 니닉은 힘겨운 머리 굴림에 반응한 즉흥적 개념이라고 조심스럽게 정의해본다.

창작에 있어 최초의 행위인 컨셉트의 발견, 곧 주제의 발상은 그 의미가 자칫 포괄적일 수 있다. 모든 예술 활동, 그 외 학문적 요소들마저 컨셉추얼 아트(개념 예술)에 귀속시켜야 할 것 같은 분류학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니닉을 통해 말하는 컨셉추얼 아트는 현대미술 혹은 현대문화의 한 부분인 총체적 창작활동으로, 순수미술의 기법과 역사에 미완의 각본을 더하고, 무엇보다도 발상과 영감에 근간을 두는 차별화된 장르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에 의거하는 컨셉추얼 아트의 정의와 관점은 현재 다양한 영화·애니메이션의 기획, 개발단계에 기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도예와 회화,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공부한 것은 이들 각각이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다른 큰 뜻을 이루기에 필요한 요소가 된다는 의미다. 큰 뜻이란 곧 완성된 애니메이션이며, 니닉은 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모든 작업의 연결고리가 되는 주제어다. 모든 아이디어는 니닉으로부터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특정 구조를 가진 연상과정으로 발전했고 이것이 지금의 컨셉추얼 니닉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건조시키는 과정은 질료와의 무수한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며 가마에 넣어 소성할 때는 자칫 잘못될까 마음을 졸이는 부모와 같은 마음을 들게 한다. 흙 자체가 가지고 있는 원시성과 성형에의 자유로움, 동시에 다분한 제한점과 그것을 타협해나가는 끈질긴 과정은 흙이 작가의 모성을 자극하기에 적합한 조형매체로 거듭난 이유가 될 것이다.
흙의 이러한 투박한 조형성에서 매력을 느꼈다면, 컴퓨터는 색채를 통해 상상력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매체이다. 컴퓨터 역시 무한한 진보가능성과 폐해를 동시에 가졌는데, 수작업의 많은 부분을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는 요즈음에는 이 문명의 이기를 통한 예술 작품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차원의 디지털 미디어의 표현의 자유는 캔버스를 뛰어넘고 있으며 특히 영상제작에서 필요 불가결하다.

흙과 컴퓨터, 가능성과 타협점을 다분히 지닌 이 두 매체들은 ‘김아영’이라는 중개자를 통해 이상하리만치 서로 연관되려 하는 것 같다. 도예전공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 디지털미디어를 접목시키려 했고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 시에는 디지털과 순수미술을 연관 지을 방법에 대해 늘 고민했다. 흥미로운 것은, 둘의 어우러짐이 컨셉츄얼 아트의 작업방식을 거치면서 이야기의 발생에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지가 무성한 나무처럼 우거지기 시작했고, 이제 남은 것은 정원사가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어 외관을 다듬는 일이다.

언어로서 니닉은 인터넷 신조어나 은어처럼 의미전달의 대상에 제한을 둘 수도 있고 한자처럼 한 글자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할 수도 있다. 이 불특정 언어를 작품의 주제로 삼은지도 벌써 7년, 그 긴 시간동안 컨셉추얼 아트에 입각한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내 작업이 컨셉추얼하다‘는 말의 의미를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납득한 지는 사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컨셉추얼 아트에의 도전으로 꽤나 무모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상이 내면의 창조활동이라면, 전시회를 통한 상상의 표출은 외부적 구현방식이다. 다다이즘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혹은 너무 많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 ‘니닉’. 그 상상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이번 전시의 작가와 작품들은 새로운 호기심과 탐구심에 가득 찬 관객들을 기쁘게 환영한다.

김 아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