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의식 RECOVERY CEREMONY

환성의식(네골을 이용한 흔적 지우기 본능 되살리기) Recovery Ceremony(feat. Negol)
김아영 니닉 작가×주동하 노뜰 배우 영상&퍼포밍 협업
2022


흙의 신전 Temple of earth
허니컴 패널 등 종이, 페이퍼클레이 흙물 paper including honeycombed paper panel, paper clay slip
140×190×260cm
2022


환성하다 : 잠자는 사람을 깨우다.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 주다.


1. 대지의 신전에서 만나는 두 사람
이곳은 대지의 신전. 종이로 지어진 신전은 가끔 기울고 흔들리지만, 두 세상을 버틸 만큼 단단한 힘이 있습니다. 단 몇 개의 판과 기둥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신전에는 그보다 많은 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땅속에 묻힌 것처럼 은밀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다른 차원에서 왔기에 우리 눈에 담기지 않을 뿐입니다. 신비로운 이 공간에서, 두 사람이 만납니다.

2. 두 세상을 연결하는 의식의 준비
인간 세상과 니닉 세상도 이 신전을 통해 연결됩니다. 니닉, 그것은 제가 창조해낸 이야기 속 세상입니다. 니닉, 다른 차원의 세상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곳입니다. 신전을 장식한 흰 흙은 땅 본연의 순수함입니다. 신전에 바른 흙으로 두 사람의 몸에도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의 의식 또한 신전에 연결합니다. 서로 다른 두 세상의 존재가, 서로를 인식하는 징표입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터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신전의 기둥이 각각의 층을 연결하듯이 말입니다.

3.네골에 시동을 걸다
니닉 세상에는 생명체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궁극적인 장치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질, 생각과 같은 추상적인 행위에도 영향을 줍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겨누어 사용합니다. 이 새빨간 원뿔형의 장치 이름은 네골이라고 합니다. 네골은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진 만큼, 스위치로 켜고 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수행자의 의지와 특별한 동작에 의해 시동합니다. 네골을 사용해서 인간이 버리고 덜어내어 이 땅에 오염을 덜 남기도록 변화시킨다면, 어쩌면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는 환경을 단기간에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주입하거나 빼는 방식이 아닙니다.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으나 잘 사용하지 않게 된 의식의 한 부분, 그것을 다시 불러내는 것입니다. 바로, 흔적 지우기 본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그 힘 때문에, 네골을 있는 그대로 인간 세상에서 사용하려면 합당한 의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전에서의 의식”이라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을 찾아내게 됩니다.

4. 환성의식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 삶의 터전에 나쁜 흔적들을 남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이라고 해서 이 땅에 흔적을 안 남기고 살지는 않습니다. 제멋대로 살고 영역을 표시하며 제가 하지 못하는 부분은 기생하고 공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천적 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기척을 죽일 줄 알고 자기 주변을 예민하게 정리합니다. 야생에서는 새끼도 일종의 흔적이 됩니다. 출산 후 태반 및 오물 처리를 하고, 환경에 따라 새끼를 적게 낳거나 물어 죽이기도 합니다. 저마다 치열하게 생존하며, 결과적으로는 흔적 남기기와 흔적 지우기가 균형을 이루어 순환합니다. 인간 세상의 참혹한 질문 속에서도 답을 얻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합니다. 위대한 발견이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 쓰레기를 손에 쥔 채 쓰레기통을 찾아다니는 사람 환경에 위해가 되는 물질이 최대한 적은 생활용품을 사용하려는 사람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포획되거나 사육되는 동물들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산업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대체물을 개발하는 사람 처리 불가능할 정도로 생겨나는 가축의 분뇨를 자연 친화적으로 처리하고자 연구하는 사람.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존재와 그들의 행위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파괴하려는 본성과 지키려는 본성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에는 균형을 감지하는 본능 또한 분명 내재합니다. 다만 주어진 이상의 욕심과 어쩌면 지능적 우월성이 그 본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사회는 행위자와 후 처리자가 다른 상황이 반복됩니다. 순환보다는 분리의 개념이 앞서있고, 이것은 일종의 도덕 상실로 이어집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만 보아도, 행하고 취했던 것의 흔적이 그대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상태나 물건의 제자리를 기억하고, 복원하고, 마무리 짓는 습관. 다녀간 자리를 뒤돌아볼 줄만 안다면, 다음에 같은 자리를 거치는 이들이 차례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깨끗한 순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5. 흔적 지우기의 발동
“이미 저질러버린 우리가 대체 무엇을 정화한다는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전쟁마저 견뎌내고 있을 땅과 그 위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린다.” 의식의 리허설을 모두 마쳤습니다. 지금부터 수행자가 이곳에서 직접, 네골을 다루어 춤을 추며 주문의 의식을 치를 것입니다. 환성의식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