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자라의 원주민. 단달계의 고대종족. (니닉 제1장 청록전쟁 편 발췌) 미누는 네 개의 길고 가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네 발을 모두 사용해 보행했다. 행동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달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개체의 크기는 다 달랐는데, 성체의 경우 곧게 서면 빌가의 두 배는 되었다. 이목구비를 갖춘 얼굴에는 이마에서부터 둥글게 내려오는 길쭉하고 뭉툭한 부리 같은 코를 중심으로 커다란 타원형의 검은 두 눈이 영롱하게 빛났다. 다 자란 미누의 머리에는 끝에 술이 달린 뿔 한 쌍이 턱 뒤쪽에서부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있었고, 밝은 옥색의, 마치 크림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갈기가 머리 뒤에서 목을 타고 앞다리까지 내려왔다. 색은 청록을 비롯해 흰색, 노란색, 연두색 등으로 주로 이루어졌다. 배에서부터 뒷다리와 엉덩이에 걸쳐 샛노란, 혹은 연둣빛의 화려한 깃털바지를 입었는데, 연륜이 들수록 꽁무니에 에메랄드빛의 커다란 깃털이 생겨나곤 했다. 잘록한 허리부터 가슴께, 우아하게 뻗은 긴 목을 타고는 둥근 고리(ring) 모양의 뼈가 도드라져 있었는데 미누는 그 뼈들을 진동시키거나 주름통 마냥 수축, 이완하여 은은한 공명을 자아냈다. 그것은 [우웅] 하는 단조로운 음뿐이었지만 그 미세한 강도조절과 높낮이를 언어로 삼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누의 음파 언어체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지만 빌가는 미누가 특별히 자신들이나 사물 등을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는 것, 눈을 통해 일종의 사념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냈다. 또, 미누는 무엇을 상대에게 설명하거나 지칭할 때도 눈으로 설명해주려는 대상, 지칭하고자 하는 대상을 응시하며 그것, 이런 것 따위의 대명사로 말했다. 미누의 발에 있는 매끈한 발굽은 별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고, 딛고 있는 물질의 밀도에 맞춰 발굽 스스로 밀도를 달리할 수 있었다. 변화된 발굽 바닥의 지문으로 장력을 일으키고 모양을 조절해, 미누는 어디에서든 늘 안정적으로 몸을 가누고 움직일 수 있었다. 빌가의 경우는 신체 구성 물질이 슈자라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자연히 지형과 융화되지 않고 마찰의 틈을 딛고 설 수 있었다. 슈자라 전역에는 일천 개나 되는 미누의 부락이 터를 잡고 있었다. 미누는 꼭 예순 이하의 정원으로 하나의 거주지를 이루었으며, 만약 그 수가 예순을 초과하면 부락의 구성원들 중 하나가 정원이 다 차지 않은 다른 부락을 찾아 떠나는 특이한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빌가는 그렇게 부락을 떠난 미누를 떠돌이 미누라고 불렀다. 떠돌이 미누는 고리모양의 뼈를 울려 여느 때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구성의 노래를 부르며 정처 없이 슈자라를 거닐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노래가 구성원의 수가 예순보다 적은 부락에게 닿으면, 그 부락의 미누가 화답노래를 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고 떠돌이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때로는 허허벌판에서 신기루처럼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원주에 반사되어 메아리치기도 하는 그 노랫소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로웠다. 이름과 어울리게, 미누는 단 하나의 성(gender)으로 발현되었는데, 성체는 일생에 한 번 때가 되면 어딘가로 사라져서, 시간이 지나면 어린 미누를 하나 데리고 부락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떻게 어린 미누를 얻은 것인지 빌가는 그 비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미누는 높은 정신력과 맑은 영을 가지고 있었고, 지능으로 말미암은 인위적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명 본위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삶의 자연환경 또한 모두 본질적인 힘의 덩어리였고, 곳곳에서부터 생명의 꿀이 한없이 흘렀기 때문에 미누는 배고플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난 그대로부터 다시 난 그대로로 돌아갔으므로 개발과 훼손의 개념도 없었다. 그런 미누의 문화에서도 먼 과거에 세워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인공물이 하나 발견되기는 했다. 유난히 거대한 원주들이 모인 산에 길쭉한 아치형의 문을 여러 개 뚫고 기둥을 세워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누는 아치문 근처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행여 아치문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정해져있기라도 한 듯,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만 통과했고 그 반대로 지나야 할 경우는 아무리 먼 길이라도 돌아서 갔다.